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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가주에 앉아 ‘꼼꼼한’ 한국사찰 순례

2022-02-17 (목)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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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여 스님 일감 스님 등, 깊이있는 순례방송 회향

북가주에 앉아 ‘꼼꼼한’ 한국사찰 순례
내 비록 산하대지 주인이건만(朕乃大地山河主 짐내대지산하주)/ 나라걱정 백성걱정 번다함만 더할 뿐(憂國憂民事轉煩 우국우민사전번)/ 백년 삼만육천일을 산다 한들(百年三萬六千日 백년삼만육천일)/ 승가에 머문 한나절에도 못미칠 뿐(不及僧家半日閑 불급승가반일한)

청나라 3대 황제 순치제(順治帝, 1638~?)가 지었다는 출가시의 일부다. 만주와 중국을 통일해 청나라 전성시대의 기초를 닦은 그는 18년 재위(1644~1661) 끝에 돌연 황제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출가해 은둔수행자 혹은 무명씨부목으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1661년에 병사했다는 설도 있다.

그는 고조선에서 부여와 고구려를 거쳐 발해까지 수천년간 우리(민족과 말갈 여진 등 이웃민족의 공동)강역이었던 만주를 ‘거의 영영 중국땅’으로 만든 장본인이지만, 그의 출가시는 한국불교에서도 곧잘 인용된다. 길로이 대승사 설두 스님이 이전불사 이후를 도모할 점찍고 내심 공들였던 중국(윈난대) 미국(하버드대) 유학파 출신 세등 스님(보스턴 문수사 주지)이 10여년 전에 한 인터넷글방에 띄워놓은 순치제와 출가시에 대한 글의 마무리가 사뭇 비장하다. “...천하를 호령했던 황제도 출가하여 수행자로 살았는데 내 무슨 속세에 미련이 있으랴…”


그런데 어쩌랴, 순치제 출가시가 아니라도 약 350년 뒤 세등 스님 기고문이 아니라도 ‘절로 가는 마음’은 굴뚝같은데 코로나 등 때문에 ‘절로 가는 걸음’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큰맘 먹고 한국산사 순례를 하려 해도 1주일 자가격리 등 제약이 여간 아니어서 지레 움츠릴 수밖에 없으니.

길은 있다. 직접순례 못지않은 간접순례, 그런 길이 있다. 북가주 등 해외에서도 언제나 한국의 명찰을 둘러볼 수 있다, 컴퓨터나 휴대폰이 있고 절로 가는 마음만 있다면. 게다가 돈이 들지 않고 절의 역사부터 건조물이나 기념물에 담긴 사연 등 깨알정보와 알뜰지식이 가득한 도우미스님의 안내를 받으니 웬만한 이들은 가서 보는 것보다 더 많이 보고 가서 듣는 것보다 더 많이 들을 수 있다.

<무여 스님과 함께하는 사찰여행>과 <일감 스님의 만행-신개념 대한민국 사찰순례기>. 비대면 시대 온라인 사찰순례의 본보기들이다. 둘 다 유튜브에서 만날 수 있고 일감 스님의 것은 BTN-TV에서도 볼 수 있다.

매회 “반갑습니다. 아름다운 사찰여행, 저와 함께 행복한 마음으로 출발해보실까요?”라고 인사하는 무여 스님(전국비구니회 문화포교국장, 사진)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포교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2019년 3월 강화도 전등사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근 120사찰 순례영상을 회향했다. 길이는 대략 15분 안팎이다. 적게는 수천명 많게는 수만명이 조회하고,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무여 스님과 함께하는 사찰여행으로 마음수련 잘 하고 있습니다” 등 감사댓글이 주렁주렁 달린다.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일감 스님은 중앙아 알타이지역을 돌며 뜬 암각화 탁본 50여점에 시와 에세이를 붙여 재작년에 <하늘이 숨겨둔 그림, 알타이 암각화>란 책을 펴낸 전문가인데, BTN 프로그램 일환으로 2019년 봄에 해남 대흥사부터 만행을 시작했다. 상세해설과 산사대담 등이 곁들여져 편당 길이는 1시간 안팎이다. 여기에도 “가고 싶어도 저처럼 갈 수 없는 이들에게 더없이 평안하고 감사함을 안겨주는 시간”이라는 등 감사댓글이 연등처럼 걸린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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