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덕극으로 정직·거짓과 명예에 관한 현대판 우화

2022-01-07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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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영웅’(A Hero) ★★★★½ (5개 만점)

▶ 채색된 진실이 매스컴 등에 전파되면서 사회적 영향의 역설을 촘촘하게 엮어내

도덕극으로 정직·거짓과 명예에 관한 현대판 우화

라힘이 아들을 데리고 빚 청산을 위해 거리를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혼’(A Separation)과 ‘세일즈맨’(The Salesman)으로 두 차례나 오스카 국제극영화상을 탄 이란의 아스가르 파라디 감독이 연출하고 각본을 쓴 도덕극으로 정직과 거짓과 명예에 관한 현대판 우화이다. 과연 진실이란 무엇이며 그 것에 약간 채색을 하면 거짓이 되는지를 묻고 있는데 악의 없는 한 작은 채색된 진실이 매스컴을 비롯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물결을 치게 되는 역설을 촘촘하게 엮어가고 있다.

궁지에 몰린 주인공이 이 궁지를 벗어나기 위해 진실을 약간 비틀어 진짜 진실로 내놓았다가 조금씩 더 진실에서 멀어지면서 자기가 한 거짓의 올가미에 매이는데 비록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그와 연관된 다른 사람들까지도 이 올가미에 얽매이면서 인간의 추한 속성과 허위가 드러나게 된다. 플롯이 복잡하나보편타당성이 강한 드라마로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속한 사회적 현실과 인간 내면이 해부 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영화는 소셜 미디어의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장소는 이란의 쉬라즈. 빚 때문에 옥살이를 하고 있는 간판업자 라힘(아밀 자디디)이 이틀간의 출소 특혜를 받고 교도소를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이혼한 전처의 오빠로 가게주인인 바람(모센 타나반데)의 빚보증을 받고 고리대금업자로부터 사업자금을 빌렸다가 돈만 날리고 옥에 들어간 것. 이런 관계로 바람은 라힘에 대해 악의를 품고 있다. 라힘에게는 말을 더듬는 어린 아들 시아바시가 있는데 이 아이는 라힘의 누나가 돌본다.


라힘은 바람을 찾아가 자기에 대한 고소를 취하해줄 것을 간청하나 별무효과이다. 이런 라힘에게 그와 결혼하기로 약속한 애인 파르혼데(사히르 골두스트)가 버스 정거장에서 발견한 여자 핸드백에 든 17개의 금화를 준다. 둘은 처음에 이 금화를 팔아 빚의 일부를 갚을 생각으로 금은방을 찾아가나 가격이 맞지를 않아 포기한다.

이어 라힘은 버스 정거장 주위에 핸드백 주인을 찾는 전단을 붙이는데 이를 본 가방의 주인이 찾아온다. 라힘의 선행(?)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 그는 대뜸 영웅이 되는데 교도소장은 교도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라힘에게 TV 인터뷰 때 핸드백을 발견한 사람이 파르혼데가 아니고 라힘이라고 말하라고 종용한다. 라힘의 착한 행동이 널리 알려지면서 자선단체가 나서 라힘의 빚을 갚기 위한 모금 행사까지 열고 라힘의 일자리도 마련해 준다. 그리고 TV는 라힘의 궁핍한 처지에 사람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말을 더듬는 시아바시까지 인터뷰한다.

그런데 이렇게 라힘이 매스컴을 타면서 영웅이 되는 반면 빚보증을 서준 바람은 나쁜 사람이 되면서 바람이 끝까지 라힘에 대한 고소 취하를 거부하자 라힘과 바람 간에 주먹다짐이 벌어지고 이 장면을 셀폰으로 찍은 것이 삽시에 퍼지면서 라힘의 명성(?)이 먹칠을 당한다.

라힘 역의 자디디가 다소 주눅이 든 표정으로 마지못해 짓는 듯한 미소를 띠면서 어눌한 연기를 잘한다. 어떻게 보면 감정보다 두뇌에 더 어필하는 영화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세련되고 지적인 멜로드라마다. 오스카 국제극영화상 후보 쇼트리스트에 올랐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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