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계상황 속에 빠진 인간의 심리상태와 역설적인 삶 그려

2021-10-29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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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모래집의 여인’ (Woman in the Dunes) ★★★★½(5개 만점)

한계상황 속에 빠진 인간의 심리상태와 역설적인 삶 그려

모래집 속의 남자와 여자는 고독과 협소감에 짐승같은 섹스로 분풀이를 한다.

작품에서 인간과 사회의 공존 관계를 추구해온 일본의 히로시 테시카하라 감독의 1964년 작으로 칸영화제서 특별 심사위원상을 탔고 테시카하라가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오스카 감독상 후보에 올랐었다.

극도로 제한된 한계상황 속에 빠진 인간의 심리상태와 역설적인 삶의 한계와 신비를 탐구한 실존적 영화다.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가 혼재된 느낌을 주는 영화로 이런 느낌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원시적 선정미를 발산하는 흑백촬영에 의해 더욱 강조된다. 이와 함께 저명한 영화음악 작곡가 토루 타케미추의 모래의 호흡과 미끄러져 내리는 행동을 불길하게 묘사한 음악이 뛰어난다.

줌페이 니키(에이지 오카다)는 30대의 교사로 아마추어 곤충채집가. 그는 어느 날 바닷가 마을로 곤충채집을 나갔다 막차를 놓치면서 마을 사람들에 의해 깊은 모래언덕 속의 집으로 안내된다. 다 쓸어져가는 집에는 여인(교코 기시다)이 혼자 사는데 그녀는 모래바람에 남편과 아이를 잃은 과부다. 여인은 남자에게 저녁대접을 한 뒤 지붕 위로부터 계속해 흘러내리는 모래를 푸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남자가 이튿날 아침 깨어나니 외부세계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밧줄 사다리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남자는 자기가 마을 사람들에 의해 여인과 함께 모래집 속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여인과 함께 마을 사람들로부터 음식과 식수를 조달받기 위해 모래를 퍼내면서 탈출을 시도하나 번번이 실패한다.

모래감옥에 갇힌 두 남녀는 고독과 욕정에 못 이겨 자포자기적으로 폭력적인 섹스에 몸을 맡긴다. 남자는 모래 푸기와 섹스를 거듭하면서 줄기차게 자유를 찾아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마침내 모래 집 밖으로 빠져나온 남자는 “아직 달아날 필요가 없어”라면서 모래 언덕 속으로 내려간다. 영화는 7년간 소식이 없는 줌페이 니키의 공식실종을 적은 경찰 보고서로 끝난다.

줌페이 니키는 왜 천신만고 끝에 찾은 자유를 포기했나. 자유는 선택의지에 따른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거부해온 현실을 인지하고 있는 그대로를 수용함으로써 비로소 영혼의 자유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자아와 삶까지 찾은 것이다. 니키는 채집자에서 채집품이 되어버린 역설을 통해 본격적으로 삶과 직접 대결을 하게 된다. 실존의 경험이란 이렇게 혹독한 것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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