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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체인지’적 국면전환이…

2021-09-27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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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이 함락됐다. 2021년 8월15일이 그 날이다. 돌아온 탈레반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은 생지옥으로 변모했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카불에서 종막을 고했다.’- 쫓기듯 철수하는 미군의 모습. 이와 함께 여기저기서 나온 진단이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후인 2021년 9월15일. “우리는 규칙에 기초한 국제 질서라는 지속적 이상과 공동 약속에 따라 파트너 국가와의 협력을 포함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외교, 안보, 국방 협력을 심화하기로 했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호주의 정상은 이 같은 공동성명과 함께 3국의 새로운 안보 파트너십인 ‘오커스’(AUKUS)동맹 발족을 발표했다.

오커스는 인도태평양에서 안보 협력 강화와 정보기술 공유의 심화를 목표로 한 협력체로, 특히 첫 구상으로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미국과 영국이 지원키로 한 것이다.


중국이라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했다. 민주주의니, 자유니 하는 완곡한 워딩으로만 일관했다. 그렇지만 전하고 있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제 2의 냉전 상황을 맞아 대 중국전선의 라인업이 짜여 졌다는 명백한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Surprise, surprise!”- 전격적인 오커스동맹 발표에 아시아타임스가 보인 반응이다. 노련한 바이든의 양동작전에 베이징이 허를 찔린 꼴이라고 할까. “8월은 미국과 미국의 우방으로서는 비참한 달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시대가 끝났다는 판단은 시기상조의 오판이다. 9월 들어 상황은 완전히 반전됐다.” 오커스동맹 발족과 관련해 애틀랜틱지가 한 지적이다.

그러면 이 두 가지 사태 중 어느 사태가 더 지정학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을까.

‘당연히 후자’라는 것이 하버드대학의 로버트 카플란의 진단이다. 오커스동맹은 인도-태평양 버전의 대서양헌장으로 단 한 번의 과감한 외교조치로 중국이 우위를 점해온 인도-태평양지역에서의 지정학적 판세를 뒤집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프랑스의 안보전문가 앙투안 봉다즈도 비슷한 분석을 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오래 동안 꾸어왔던 악몽이 현실이 된 것으로 지적하면서 이 인도-태평양지역의 다국적 동맹에 내일이라도 일본이 가입할 수 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포린 폴리시, 파이낸셜 타임스, 아시아 타임스 등도 비슷한 전망을 하고 있다.

오커스동맹 발족은 바이든 행정부의 숙고의 산물로 사실상 인도-태평양 버전의 나토인 이 동맹에 캐나다가 가입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 또 다른 쿼드국가인 인도, 일본은 물론 한국, 그리고 심지어 오커스 때문에 수백억 달러의 디젤 잠수함 건조 계약을 날린 프랑스도 궁극적으로 이 아시아판 나토에 참여할 것으로 내다 본고 있다.


미-영-호주 3각 동맹발족. 이것이 던지는 또 다른 메시지는 미국 편이냐, 중국 편이냐를 분명히 하라는 것으로 포린 폴리시는 이미 도미노현상을 일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했다.

다른 말이 아니다. 중국의 그늘에서 ‘핀란드화’를 강요당했다. 그런 동남아 등 역내 국가들이 대거 미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는 거다. 미국과 중국 가운데에서 외줄타기 곡예를 해왔다고 할까. 그 싱가포르가 공개적으로 오커스동맹에 환영메시지를 내놓은 것이 그 한 예다.

정리하면 이렇다. 미-영-호주 3각 동맹발족은 미국과 중국이 극한 대립상황에 벌어지고 있는 인도-태평양지역 형세에 ‘게임체인지성의 국면전환이 이루어진 것으로 특히 호주에 핵잠수함 함대를 제공함으로써 중국의 최대 군사적 취약점을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신의 한 수‘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중국은 어쩌다가 ‘자칫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는 처지’에 몰리게 됐을까.

졸부의 지나친 돈 자랑 멘탈리티가 그 원인으로 지적된다. 미국 다음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그 경제력을 믿고 베이징은 안하무인격인 강압외교를 펼쳐왔다. 툭하면 경제제재를 가한다. 그것도 모자라 ‘전랑외교’를 통해 마구 타국의 내정간섭을 해댄다.

그 역반응이 반중연대 확산이고 이는 아시아판 나토 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뭔가의 데자뷔로 보인다’- 오커스동맹 탄생과 함께 나오는 또 다른 지적이다. 이와 함께 새삼 들먹여지는 것이 ‘앵글로스페어(Anglospere)’란 단어다.

앵글로스페어의 나라들,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한 세기 이상 미국과 함께 싸우면서 세계대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1, 2차 대전에서 미-소 냉전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그 앵글로스페어를 부활시킬 때다’- 지난해 8월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실린 영국의 역사학자 앤드류 로버츠의 기고문 제목이다.

이 네 나라는 미국과 함께 정보공동체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를 형성하고 있다. 이미 정보 수퍼 파워인 셈이다.

그런데다가 이 네 나라 인구를 모두 합치면 1억3,500여만의 인구 대국이 된다. 이 앵글로스페어의 GDP총계는 6조 달러가 넘고 국방비 총액은 1,000억 달러에 이른다. 그 자체로 이미 수퍼 파워급이다. 그러니까 미국과 앵글로스페어연방, 두 수퍼 파워가 힘을 합쳐 공산전체주의 중국견제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로버츠의 주장이다.

‘앵글로스페어는 가상이 아닌 국제정치의 엄연한 실재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로버트 카플란이 오쿠스동맹 발족과 관련해 내린 또 다른 진단이다. 2차 세계대전의 논리가 되살아나나면서 앵글로스페어는 과거가 아닌 미래의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거대 진영의 대립 상황에서 한국은 어느 쪽을 선택할까. 문재인과 정의용의 발언으로 봐서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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