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짜 신원을 이용, 인간관계를 기묘하게 뒤틀어 만든 로맨틱 드라마

2021-09-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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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 이야기 - 새 영화 ‘날 누구라고 생각해요’(Who You Think I Am) ★★★★ (5개 만점)

▶ 다양한 장르 뒤섞이며 내용 반전 구사, 히치콕 스타일의 스릴러 분위기 품어

가짜 신원을 이용, 인간관계를 기묘하게 뒤틀어 만든 로맨틱 드라마

클레어가 파리 기차역에 나와 자신의 버추얼 신원인 클라라를 찾는 알렉스를 살펴보고 있다.

페이스북 등 컴퓨터와 온라인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으킬 수도 있는 가짜 신원을 이용한 인간관계를 기묘하게 뒤틀어 만든 히치콕 스타일의 스릴러 분위기마저 지닌 우아한 로맨틱 드라마로 프랑스 영화다. 다양한 장르를 뒤섞어 가면서 기습하듯이 내용의 반전을 구사해 시종일관 얘기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하고 궁금하게 만들어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다소 믿어지지 않는 점도 더러 있고 또 흥미를 최대한으로 북돋겠다는 끝이 지나치게 엉뚱해 놀라면서도 허전한 기분이 나지만 여주인공 쥘리엣 비노쉬 같은 명품영화라고 하겠다.

클레어(비노쉬)는 50세난 파리대학의 문학교수. 얼굴의 주름살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는 나이다. 이런 중년 여인의 불안은 오래 같이 살던 남편 질르(샤를르 베를링)가 자신과 두 아들을 버리고 젊은 여자에게 간 터라 더욱 절실하다. 클레어 에겐 젊은 애인 뤼도(기욤 구이)가 있지만 뤼도가 자기를 심각 애인으로 여기질 않아 불만이 큰데 이로 인해 뤼도와 헤어진다.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클레어는 엉뚱하게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젊고 아름다운 여자 사진을 골라 패션회사에서 일하는 24세난 클라라를 만들어 낸 뒤 온라인 대화상대로 뤼도의 젊고 잘 생긴 룸메이트 알렉스(프랑솨 시빌)를 선택한다. 클레어는 이런 자신의 일들을 자기 심리 상담의 보르망(니콜 가르시아)에게 낱낱이 토로한다.


그러나 장난 식으로 시작된 클라라와 알렉스의 관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심각하게 발전, 로맨틱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클라라의 부탁에 따라 클라라를 직접 만나기를 참던 알렉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클라라를 만나러 오겠다고 선언하자 클라라는 알렉스와의 관계를 단절한다. 그리고 클라라에서 제 신원으로 되돌아간 클레어는 알렉스가 도착하는 기차역으로 가 클라라가 혹시나 역에 나왔나하고 두리번거리는 알렉스를 관찰한다.

클라라가 없자 실망한 채 버스를 탄 알렉스를 따라 클레어도 차에 오른 뒤 알렉스 앞에 앉아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둘은 서서히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애인 사이가 되어 동거생활에 들어간다. 그러나 둘의 짙은 관계는 뜻밖의 비극으로 끝난다. 깜짝 놀라게 된다. 이어 영화의 후반부가 시작되고 그 내용은 클레어가 그 후의 얘기를 글로 쓰면서 진행된다. 얘기 속의 얘기 식으로 진행되는 글의 끝은 역시 놀라게 되는 인과응보 식의 비극으로 끝이 나는데 좀 엉뚱하다.

믿어지지 않는 것은 미와 지를 겸비한 클레어가 남자가 없어 외로워 한다는 사실과 알렉스가 어떻게 그렇게 자기가 사랑하는 클라라를 장기간 못보고도 찾지를 않는가하는 점이다. 비노쉬가 자기 신원을 감추고 기만으로 대인 관계를 유지하는 여인의 연기를 섬세하면서도 차분하고 심도 깊게 한다. 뛰어난 연기로 상감이다. 사피 네부 감독의 연출도 맵시 사뿐하면서도 단단하다. 랜드마크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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