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음산한 필름 느와르로·어두운 시적 범죄영화

2021-08-20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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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 이야기 - ‘악의 터치’(A Touch of Evil·1958) ★★★★½(5개 만점)

음산한 필름 느와르로·어두운 시적 범죄영화

미국인 형사 행크(왼쪽)와 멕시칸 형사 마이크는 사건을 함께 수사하면서 의지의 대결을 벌인다.

천재 영화인 오손 웰즈가 각본을 쓰고 감독하고 주연한 냉소적이요 음산한 필름 느와르로 촬영과 음향과 편집 및 스타일이 혁신적인 어둡고 뒤틀린 시적 범죄영화다. 위트 매스터슨의 소설 ‘악의 배지’가 원작으로 3분 20초 동안 한 번의 컷도 없이 진행되는 오프닝 신으로 시작된다.

멕시칸 형사 마이크 바가스(찰턴 헤스턴)와 그의 미국인 아내 수전(자넷 리)은 미·멕시코 접경 마을 로스 로블레스로 신혼여행을 온다. 둘이 밤에 마을을 걷는 중에 마을의 실력자가 탄 승용차가 폭발한다.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현장에 나타난 미국인 형사반장 행크 퀸랜(웰즈)의 모습이 거의 코믹할 정도로 불길하고 위협적이다. 너저분한 수염에 두 턱이 늘어진 얼굴과 입술 한 가운데 문 시가 그리고 중절모와 외투를 걸친 엄청나게 비만한 몸에 지팡이를 짚은 모습이 마치 거대하고 추한 두꺼비 같다.

카리스마가 있는 행크는 나이 먹고 부패한 사람인데 젊고 이상적인 마이크가 그를 도와 사건을 풀어나가면서 두 사람간의 의지의 대결이 일어난다. 마이크가 수사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수전은 마이크에게 원한이 있는 동네 마약 딜러 두목 그랜디(아킴 타미로프)의 졸개들에 의해 납치되면서 마이크와 수전의 얘기가 교차 묘사된다. 그리고 마이크는 행크가 사건해결을 위해선 마음대로 증거를 조작한다는 것을 알아낸 뒤 행크의 오랜 동료 형사 피트의 양심에 호소해 행크의 비리를 밝혀낼 계획을 짠다.

부패와 인간의 타락을 괴상망측하게끔 파헤친 심리범죄영화로 특히 카메라의 각도와 그림자와 클로스 업 그리고 흑백명암등을 사용해 찍은 표현주의적 촬영이 어둡고 더럽고 타락하고 부패한 것들의 속성을 아름다울 지경으로 승화시켜 놓았다. ‘검은 영상시’라 불리는 영화로 싸구려 색주가의 술집 주인 역을 비롯해 자자 가보 등 유명 배우들이 캐미오 출연했는데 웰스를 비롯한 인물들의 역이 모두 개성 있고 독특하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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