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없는 나무는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가 나무의 본질을 결정한다. K 부부는 비숍 카운티의 유일한 동양인이자, 한국인이다. 낯선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걱정되긴 했지만, 한국인이 없는 곳이 제일 조건이었기에 기꺼이 비숍을 택했다. K 부부가 이민을 결정한 결정적 이유는 씨랜드사건 때문이었다. 5살 아들은 유치원에서 주최하는 수련회에 참석한다며 한껏 들떠서 집을 나섰었다. 아들의 그 작은 행복은 하루도 넘기지 못하고 한줌의 재로 변해버렸다. 뉴스에 보도된 초현실적인 비극적 상황은 너무나 잔인했다. 아이들은 ‘엄마, 뜨거워요! 살려주세요!’애절한 절규 속에 사그라들었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을 때 뼈대조차 남지 않는 흉측한 잔해를 보고 아내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K는 카이스트에서 촉망받던 연구원이었고 그의 아내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받은 공로로 국가에서 훈장까지 받았던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였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라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은 훈장보다 더 큰 의미였었다. 그러나 어린 아들이 새카만 숯덩이로 변한 현실 앞에서 훈장도 태극마크도 그 의미를 찾기는 어려웠다. 어린 아들의 생명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를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어 아내는 훈장을 국가에 반납했다. 그런다고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시간의 흔적들이 지워질 수는 없었다. 결국 K 부부가 선택한 것은 나라를 떠나는 것이었다.
K가 경력을 인정받아 들어간 연구소가 근처에 있어도 인종차별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러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찾아간 백인 교회는 너무나 따뜻한 환대와 사랑을 베풀어주었다. 나이 많은 백인들은 유일한 동양인인 K 부부를 마치 자신들의 자식이나 되는 듯이 챙겨주고 보살펴주었다. 역시 한국을 떠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가슴에 심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은 국경이 없었다. K의 아내가 그나마 정서적으로 많은 안정을 찾게 된 것은 둘째를 임신한 후였다.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아들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씩 희석시켜 주었다.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대감은 구원의 손길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예정일보다 2주 정도나 빨리 양수가 터져 긴급한 상황이 벌어졌다. 문제는 4년마다 열리는 학회 컨퍼런스에 K가 책임자여서 아내 곁에 있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아내의 출산을 담당할 의사가 같은 교회 다니는 닥터 마이클이어서 걱정하지 말고 컨퍼런스에 참석하라고 했다.
쉬는 시간에 마이클이 전화를 했다. “네 아내는 건강해. 그리고 딸의 출산을 축하해. 그런데...”닥터 마이클의 목소리가 아주 낮게 깔려 있었고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불길한 예감이 전신을 파고들었다. “마이클, 뭐가 문제야?” K가 다그치자 마이클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네 딸의 몸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선천적 기형인 것 같은데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몹시 당황스러워.”
병원까지 무슨 정신으로 차를 몰았는지 모른다. K는 아들을 잃고 딸마저 잘못된다면 너무나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잊었던 분노가 자꾸 차올랐다. 병원에 도착하자 마이클이 신생아실로 K를 인도해서 강보에 싸인 딸을 K의 품에 안겨주었다. “K,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이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마이클은 비장한 표정으로 말하며 딸을 감싸고 있는 강보를 펼쳐 보였다. 침착하려고 했지만 떨리는 팔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강보를 펼치고 딸의 엉덩이를 본 순간 한껏 긴장했던 K가 외쳤다. “이건 몽고반점이야!”한국아기의 출산을 경험한 적이 없는 마이클은 몽고반점을 알지 못했다. 웃음과 눈물이 터져나오는 순간 K는 전율을 느끼며 인식했다. “아, 나는 한국인이구나! 어디를 가서 무엇이 되더라도 나는 한국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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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