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부터 반세기동안 한국일보와 함께해온 주영옥 독자. <손수락 기자>
“한국일보는 한인 긍지 높여주는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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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독자/라피엣 주영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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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부터 구독해온 열혈 독자
남편 주용규씨, 신문 영구 보존에 기여
한인사회 등불로 희망적 미래 이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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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미주 본사 창간 다음해인 1970년 창간된 샌프란시스코 한국일보를 51년간 구독해온 주영옥(84, 라피엣)씨는 한국일보와 더불어 살아왔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1965년 버클리로 이민 온 그때가 29살의 청춘이었던 주씨는 한국 소식을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한국일보는 귀한 존재였다고 회고했다.
주씨는 “이민 초기, 한인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에 한국일보를 받아볼 때면 감개무량했다”면서 “한국일보를 통해 고국소식을 접하며 향수를 달랬고, 이민생활에 유용한 정보들을 접했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때는 매일매일 한국일보가 배달되기만을 기다렸다”는 그는 “지금도 매일 아침에 한국일보를 펼쳐보아야만 비로소 하루가 안정되게 시작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씨는 아침식사 후 가장 애독하는 한국 뉴스부터 로컬, 경제, 오피니언면까지 읽다보면 2시간이 훌쩍 넘어간다면서 자신은 신문의 모든 기사와 칼럼을 읽는 열혈 독자라고 밝혔다. 오피니언면에 실린 수준 높은 모든 칼럼을 정독하다 보면 미국사회와 한인사회의 흐름이 파악된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주씨는 “UC버클리 동아시아 도서관(East Asian Library)의 한국문헌 담당 사서였던 남편 주용규 선생의 스토리가 한국일보에 크게 보도된 적이 두번 있다”면서 한국일보와의 깊은 인연도 소개했다.
주용규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수집해 UC버클리 동아시아 도서관에 소장 중인 한국 희귀 서적과 자료들의 디지털화 작업을 2000년에 시작한 주인공이다. 그 덕분에 지금 인터넷을 통해 김만중의 ‘구운몽’ ‘사씨남정기’를 비롯한 893종 4천여권의 희귀 도서와 ‘진흥왕순수비’ 등 탁본 155종의 자료를 볼 수 있게 됐다. 특히 창간호부터 발행한 샌프란시스코 한국일보 신문을 보존해온 주용규 선생의 노력 덕분에 UC버클리 동아시아 도서관에 신문이 영구 보존됐으며, 북가주 한인 이민역사가 후세대에게 온전히, 수월하게 전해지게 되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북가주 한인들이 발행한 간행물과 자료들을 수집 보관해온 그가 아니었다면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반영하는 역사의 증거도 사라졌을 것이다. 정보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그 덕분에 차후 한인 커뮤니티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아카이브(Archive, 자료 보관소)’가 구축되고, ‘오늘의 자료가 내일의 역사로 남게 되는’ 결실이 맺어진 것이다.
주씨는 “30여년간 UC버클리에서 근무한 남편은 5년 전에 돌아가셨다”면서 “UC버클리 한국어학부가 지금 이렇게 성장한 것도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주씨는 “한국일보는 매일 위로를 전해주는 친구”라면서 “50여년간 한국일보와 함께해온 세월 덕분에 내가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던 같다”고 밝혔다. 이어 “한인사회에서 등불이 되고 길잡이가 돼주는 신문의 역할은 중요하다”면서 “한인들의 긍지를 높여주고, 한국문화 전파에 힘써준 한국일보는 정말 좋은 신문, 고마운 신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인사회 동반자로서 언론의 사명과 역할을 다해온 한국일보가 있어 동포사회 앞날이 더 밝을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전했다.
한일수 독자가 몬트레이 사업장에서 한국일보를 읽고 있다.
“한국일보로 행복한 아침 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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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독자 인터뷰/몬트레이 한일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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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보는 시야 넓혀주는 길잡이
전자신문 통해 더 일찍 뉴스 접해
한국일보 튼튼해야 한인사회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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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이민 온 그 다음해부터 한국일보를 구독해온 40년 독자, 한일수(66, 몬트레이)씨는 매일 아침 한국일보를 읽는 행복으로 하루를 연다.
주중엔 AMD전자회사서 인스펙터로, 테크니션으로, 주말엔 플리마켓(Flea Market) 장사로 맨땅에 헤딩하며 투잡, 쓰리잡을 뛰어서 모은 자금으로 88년 몬트레이의 ‘아울 크리너스(The Owl Cleaners)’를 인수해 33년째 운영하고 있는 한씨는 힘든 이민생활의 고단함을 위로해주고, 세상 보는 시야를 넓혀준 것이 ‘한국일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일보가 이민 초기, 한국과는 다른 낯선 환경에서 세금, 자녀교육, 부동산, 법률 지식 등 미국생활 적응법을 알려주고, 다양한 관점으로 세계와 지역사회 흐름을 전해주었다”면서 “사회, 경제, 교육, 문화면 등의 보강과 다양화, 신문의 규모 확장, 기사의 질 향상 등 40년간 나와 함께 성장해준 한국일보를 보면 뿌듯하다”고 전했다.
산호세에서 8년을 보내고 몬트레이로 내려와 한씨가 운영한 ‘아울 크리너스’는 올해로 101년 된 몬트레이 커뮤니티의 자랑스런 업소이다. 지난 4월 29일 지역신문인 ‘몬트레이 헤럴드(Monterey Herald)’가 101년 된 ‘아울 크리너스’를 조명해 주목받았다. 한씨는 “60여년간 일본인 1, 2세대가 가업으로 운영한 ‘아울 크리너스’의 역사와 명성을 유지하고 싶었다”면서 “작년에 갑작스럽게 닥친 코로나 팬데믹으로 100주년을 기념하지 못했지만, 올해 고객 한 분이 ‘몬트레이 헤럴드’에 연락해줘서 신문기사로 보도됐다”고 말했다. 한씨는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 이제는 내 단골 고객들”이라면서 “팬데믹의 타격 속에서도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이웃 같고, 친구 같은 고객들의 서포트 덕분”이라고 밝혔다.
그는 “몬트레이처럼 소규모 커뮤니티에서는 양질의 서비스는 물론 고객들과의 끈끈한 유대가 중요하다”면서 “나는 고객들을 사랑하고, 그들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했다. 1남 2녀에 손주 3명을 둔 한씨는 “혼자의 힘으로는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면서 “받은 것을 되돌려주기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한국일보 칼럼 중에는 80년대 미국생활의 힘겨움을 전해준 ‘김한길 칼럼’에 크게 공감했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요즘엔 ‘폴 크루그먼 교수의 칼럼’에서 세계경제의 흐름을 이해하고, 새로운 통찰력을 얻는다”고 전했다. “신문 읽는 것이 삶의 낙(樂)”이라는 그는 아침 일찍 휴대폰을 통해 전자신문(e-edition)으로 경제면, 한국판 뉴스를 본 뒤 종이신문으로 오피니언란의 칼럼과 로컬 뉴스 등을 꼼꼼히 읽는다고 말했다. 간혹 신문배달이 조금 늦어져도 예전처럼 답답해 할 필요가 전혀 없다면서 종이신문보다 더 일찍 볼 수 있는 전자신문에 친근해지면 빠르게 뉴스를 접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씨는 끝으로 “한국일보 같은 로컬 신문이 튼튼해야 북가주 한인사회도 건강해진다”면서 “앞으로도 한국일보가 한인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신문으로서 발전을 거듭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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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