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종교인칼럼] 군중과 정치종교

2021-06-17 (목) 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
크게 작게
요즘 한국 사회는 태풍에 휩싸여 있습니다. 국회의원도 한 번 해본 적 없는 36세의 젊은이가 대단한 이력을 가진 대선배들을 큰 표 차이로 물리치고 야당 대표에 선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한국 현대 정치 70년 역사에 가장 큰 대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불과 4년여 전 보수 정치에 환멸을 느낀 군중들이 만든 거대한 촛불의 바다에 보수 정권이 침몰당했을 때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보수 정치의 회복은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보수 부활의 불씨를 되살렸고 희망을 쏘아올린 것입니다. 특히 보수에 대한 반발심이 누구보다 강했던 2030 세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것은 가히 혁명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보수정치가 잘해서가 아니라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스스로 몰락한 탓에 반사이익을 얻은 부분이 큽니다.

앞으로 20년은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교만하게 큰소리치던 진보의 몰락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한국 진보주의의 성벽이 왜 이렇게 급속하게 무너져 내린 것일까요? 더욱 심각한 문제는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자신들만 그 상황을 느끼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새가 한쪽 날개로 날 수 없듯이 어느 사회나 보수의 날개로만 날 수도 없고 진보의 날개로만도 날 수 없습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두 날개가 모두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진보의 추락은 건강한 한국 사회를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왜 백 년은 권세를 누릴 것처럼 견고하게 보이던 진보가 길을 잃고 혼란에 빠진 것일까요? 이유 없는 무덤은 없듯이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정치의 원래 의미는 너무 넘쳐서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물을 잘 관리하는 것이 동양정치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만큼 백성들의 실제의 삶과 관계된 의무와 책임을 가지는 것이 정치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가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정치가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정치가 종교가 되는 순간, 마치 냄비 속의 개구리가 뜨거운 물에 튀겨 죽을 때까지 상황파악을 못하는 것처럼 심각한 자가당착에 빠집니다.

무엇보다도 정치가 종교가 되면 그를 추종하는 백성은 군중이 됩니다. 군중은 올바른 비판력과 방향성을 가진 백성들과는 전혀 다르게 마치 사이비 교주를 맹종하는 광신도와 같은 판단 마비 증상을 가집니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안타깝게도 너무나 짧은 시간에 정치를 종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아마 본인들도 인식도 못할 것입니다. 그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종교가 되면 심각한 부작용들이 나타납니다.

무엇보다 비판이 불가능해집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여 집단으로 공격합니다. 비판이 사라진 권력은 언제나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내로남불이 가치의 중심이 되고 맙니다. 같은 맥락에서 다양성이 불가능해집니다.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느낌을 가지고, 같은 목소리를 내게 됩니다. 그런 획일화는 창의력을 죽이게 됩니다. 당연히 현실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조직을 백성들이 인정하지 않고 비판하면 자기들은 선하다는 아집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반성이 불가능해집니다. 최근에 진보주의 초선 의원 5명이 반성문을 발표했다가 혹독한 비판을 받고 백기투항한 것은 이들의 집단 아집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줍니다.

그런 집단에게 미래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한때는 사회적 양심의 기준으로 인식되었으나 불법의 교과서처럼 스스로를 추락시킨 전직 장관의 자서전은 정치종교의 화룡점정을 찍었습니다. 지금 정치종교에 빠져 있는 진보는 부활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기를 마지막 희망을 걸고 이 글을 씁니다.

<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