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은 정밀도, 수학적 정확성에서 의심의 여지없이 물리학 역사상 최고의 이론이다. 놀랍게도 불교의 공(空) 이론은 이러한 양자역학의 대체적인 윤곽뿐만 아니라, 세세한 항목에서도 너무나 흡사하다.”
미국의 원로 천체물리학자 빅 맨스필드(1941~) 박사가 2008년에 펴낸 저서(Tibetan Buddhism and Modern Physics: Toward a Union of Love and Knowledge)에 쓴 글이다. 다트머스대와 코넬대학원에서 이론천체물리학을 공부한 그는 1973년부터 40년 가까이 콜게이트대에서 물리학 천문학 양자역학을 가르치면서, 그리고 은퇴한 뒤에도, ‘과학과 윤리’ ‘과학과 영성’ 문제에 깊이 파고든 것으로 유명하다. 과학 속에서 바른 길을 찾아야만 인류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실천적 불교수행자가 됐고 과학과 불교를 주제로 많은 글을 썼다. 2008년의 저서는 그중 하나다.
이는 2014년 한국에서도 번역출간됐다. 불교학자인 이중표 전남대 명예교수가 번역한 이 책에는 ‘티벳불교와 현대물리학’이라는 원제와는 약간 다르게 ‘불교와 양자역학’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리고 ‘양자역학 지식은 어떻게 지혜로 완성되는가’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게 올해 초 출판사(불광출판사)를 달리해 새로 나왔다.
달라이 라마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학과 영성이라는 이 두 영역은 현대사회에서 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불교도입니다만, 만약 제가 불교 교리에만 집착하여 현대 과학의 발견들이 입증한 것을 부정한다면.....빅 맨스필드 교수는 그의 전문인 과학과 연관된 문제를 영성, 그리고 특히 불교에 대한 깊은 관심과 조화시켜 온 분입니다.....독자 여러분은 불교와 현대물리학의, 부합하지만 전혀 다른, 진실에 대한 접근법을 이 책을 통해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목차는 ‘△1 불교와 과학은 무엇인가 △2 양자역학과 자비 △3 중관사상의 공에 대한 개설 △4 평화의 물리학 △5 불교에 도전하는 양자역학 △6 상대성이론과 시간의 화살 △7 사랑과 지식의 합일을 지향하며 △색인’으로 돼 있다.
양자역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 단위, 혹은 그보다 더 작은, 아니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미시세계를 연구한다. 그런데 원자란 녀석들을 관찰하니 다 똑같다니, 사람원자 식물원자 동물원자 암석원자 먼지원자 아무런 차이가 없이 그때그때 어떤 인연(관계)에 따라 작용이 다르게 나타날 뿐이라니... 현대과학 수업시간에 2600여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대목들이 책 곳곳에 즐비하다.
책 홍보를 위해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책 속에서’ 골라놓은 문장들이 절묘하다. 맨 처음 소개된 것은 저자의 다짐처럼 다가온다. “나는 현대물리학의 자연관이 어떤 방식으로 중관사상과 정확하게 그리고 세세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떻게 다른 사람과 우리의 환경에 대하여 보다 깊은 관심을 갖는 자비로운 행위로 귀결되는지를 보여 주고자 한다. 지혜(지식)는 결국 자비(사랑)가 되지 않을 수 없다”(34쪽) 마지막에는 저자의 결론이 담겼다. “공(空), 즉 독립적 존재가 없다는 것은 그 본성상 지속적인 변화를 보장한다. 직접적으로 공을 표현하고 있는 무상은 우주의 법칙이다.”(272쪽)
불교와 양자역학에 대해서는 유튜브에도 꽤 많은 동영상 공부밑천들이 있다. 역자인 이중표 교수가 불광미디어TV에 출연해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설명하는 동영상도 있고(사진), 미주현대불교에 불교와 물리학에 대해 장기간 기고해온 고려대 물리학과 양형진 교수가 BBS 열린 강좌에 초빙돼 행한 불교와 양자역학 특강도 있다. 경희대 물리학과 김상욱 교수의 BBS 특강을 담은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 세상, 그리고 우리’ 역시 소중한 자료다. 최근에는 양자역학과 불교철학을 애니메이션으로 꾸민 13분짜리 동영상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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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