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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명절, 출가재일 20일 열반재일 27일

2021-03-04 (목)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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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명절, 출가재일 20일 열반재일 27일

조선전기 작 ‘부처님 열반도’

불교의 명절에는 유난히 8일과 15일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음력으로 따질 경우다. 연중 가장 큰 명절로 자리잡은 부처님오신날은 음력 4월8일이다. 사월초파일, 그나마 더 짧게 그냥 초파일 하면 응당 부처님오신날을 의미할 정도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가한 날을 기리는 출가재일은 음력 2월8일, 열반에 든 날을 기리는 열반재일은 음력 2월15일이다. 부처님이 위없는 큰 깨달음을 얻은 날을 기리는 성도재일은 음력 12월8일이다. (이런 건 고증된 날짜가 아니고 훗날에 ‘정해진 날짜’다.)

한국에서는 이 넷을 합쳐 불교의 4대 명절로 부른다. 여기에 통칭 백중으로 불리는 우란분절을 더해 5대 명절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 우란분절은 음력 7월15일이다. 명절은 아니지만 불교수행의 아주 오래된 전통 안거에도 음력 15일이 등장한다. 특히 한국 등 북방불교권에서 정착된 하안거(음력 4월15일~7월15일)와 동안거(음력 10월15일~이듬해 1월15일)는 둘 다 음력 보름에 시작해 음력 보름에 끝난다.

이번 3월에 4대 명절 중 2개가 1주일 간격으로 이어진다. 20일의 출가재일(음력 2월8일)과 27일의 열반재일(음력 2월15일)이다. 부처님오신날은 불연(佛緣)이 스친 곳이라면 굳이 불자 아니라도 거의 누구나 아는 날이지만, 4대 명절이란 말이 무색하게 출가명절과 열반재일에 대해서는 불자라도 무심코 스쳐버리기 쉬운 날이다. 무소유의 수행자 법정 스님이 생전에 법문이라 칼럼 등을 통해 부처님오신날보다 더 중요한 날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성도재일도 마찬가지다.


출가재일은 고대 카필라왕국의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는 세속의 권세와 복락을 포기하고 왕궁을 탈출해 수행자로 거듭난 날이다. 말이 좋아 수행자다. 빈털터리 거지가 됐다. 일생일대 대선택의 날이요 대전환의 날이다. 그 선택 그 전환은 아주 먼 옛날 히말리야 언저리에 붙은 아주 작은 나라의 한 왕자의 삶만 바꿔놓은 것이 아니었다. 그 선택 그 전환이 숱한 고행과 시행착오 끝에 결국 큰 깨달음으로 이어진 덕분에, 그리고 그 깨달은 바를 혼자만 간직하지 않고 마지막 육신을 벗을 때까지 45년간 쉼없이 아낌없이 뭇사람들에게 나누고 전해준 덕분에, 그는 2천6백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수대 수십대 수백대에 걸쳐 히말라야 언저리 작은 땅을 넘어 세계 곳곳 수억 수십억 수백억 명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됐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과학의 시대를 맞아 숱한 종교들와 신화들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마당에 그의 가르침은 다름 아닌 과학의 이름으로 더욱 굳건해지고 있으니.

열반재일은 흔한 말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돌아가신 날이 아니다. 열반에 드신 날이라는 표현도 권장할 만한 것은 못된다. ‘열반=죽음’이라는 오해만 굳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열반(nirvana)은 온갖 번뇌를 끊고 완전한 평안을 얻은 상태를 가리킨다. 즉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수행자 고타마 싯다르타가 무등정각을 얻은 순간, 다시 말해 훗날 칭해지듯 석가모니 부처님이 된 바로 그 순간부터 열반의 경지에 든 것이다. 그후 45년 삶이 다 열반의 경지에 놓여 있었다. 다만 중생들 눈에 비친 모습만 달랐을 뿐이다. 따라서 열반재일은 부처님의 제삿날이 아니라 부처님이 생전에 보여주신 열반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것이 바른 정의라고 한다. 생전이니 마지막이니 이런 말도 실은 중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득이 빌어쓴 수사일 뿐이다.

깊고 높은 그 의미에도 다른 명절에 비해 홀대를 받곤 했던 출가재일과 열반재일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 괴질 때문에 더욱 티없이 지나갈 모양이다. 십수년 전 조계종단이 정한 불교도경건주간(출가재일부터 열반재일까지)은 대중법회 없는 격리기도 형식으로 진행된다. 북가주 한인사찰들도 스님들은 절에서 신도들은 각자의 처소에서 두 재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불심을 다잡는 기도로 갈음한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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