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비익조(比翼鳥)
2020-08-10 (월) 09:45:39
김광수 / 더우드, VA
오른쪽 날개와 눈을 가진 암컷 새가 왼쪽 날개와 눈을 가진 수컷을 만나서야 비로소 하나의 완전한 새가 되어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있었다는 중국 고대의 설화(說話)가 있다. 수천년 뒤 21세기 미국 워싱턴에서 나는 그 전설의 비익조(比翼鳥) 한 쌍이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986년 늦은 7월 어느 날 저녁, 정 세실리아의 남편은 운영하는 약국 문을 닫고 옆 건물에 있는 은행의 야간 디파짓 박스를 여는 순간 권총강도의 피습으로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남편은 겨우 목숨을 건졌고 2년여의 재활 치료 후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고 후유증을 가진 채 생업에 돌아갈 수 있었다.
34년이란 긴 세월 동안 정 세실리아는 남편의 수족이 되어 불철주야 오른쪽 날개 짓으로 남편의 약국경영, 성당건축위원장 등의 힘든 일상생활을 단 한 번의 불평 없이 뒷바라지 해왔다.
그러던 중 정 세실리아는 2004년 희귀병의 하나인 폐동맥 고혈압(Pulmonary Arterial Hypertension)을 진단 받았다. 생존 가능성은 1년 반~2년 예상되었으나 새로운 치료약의 개발과 본인의 신앙, 의지, 긍정적 사고 그리고 약사 남편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16년 동안의 긴 투병 생활을 견디고자 노력했으나 2년 전부터는 24시간 산소공급 튜브를 코에 끼고 생활 하게 되었고 성당에 올 때는 휴대용 산소통을 어깨에 멘 채로 오곤 했다. 이렇듯이 정 세실리아는 주어진 현실과 환경에도 감사하며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미소를 잃지 않는 천사와도 같았다.
그런 생활태도는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총격을 당한 후 생사를 헤매다가 소생한 얼마 후 나는 그가 입원해 있던 워싱턴 하스피털 센터로 찾아 갔다. 당시 그는 총격으로 인한 성대손상으로 정상적으로 말을 할 수 없었음에도 오른쪽 다리를 공중에 매달아 둔 채 병상에 누워 “김형, 나 죽다 살았어!” 했을 때 눈물이 났지만 웃을 수밖에 없던 기억이 뚜렷하다.
그렇게 그는 다섯 달을 병상에 있었고 두 부부의 삶은 그야말로 불행과 시련을 딛고 창공을 비상(飛翔) 하는 사랑과 희망의 비익조였다.
인생무상, 세월무상, 세월은 오가고 인생도 결국 가게 되는 것, 지나간 과거는 우리의 추억 속에 침전되어 남아 있다. 진주가 제 몸 속에 들어온 이물질의 불편함을 참고 살아서 나중에 영롱한 보석을 만드는 것처럼 우리의 가슴 밑바닥에는 사랑과 우정, 기쁨과 슬픔, 아름다운 추억 등 평생의 흔적들이 보물이 되어 가라 앉아 있다.
지난 봄 오순절 기간 마태오 복음 13장 45절 “값진 진주를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산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값진 진주는 하느님의 말씀이고 가진 것은 우리의 시간이다.
이 말씀은 우리 각자가 매 순간마다 하느님께서 주신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여 당신이 보시기에 합당하고 또 이웃에게 보여서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가르침으로 나는 믿고 있다.
우리는 각자가 진주처럼 아름다운 보물을 하나씩 가슴에 안고 간다. 정 세실리아 부부가 삶을 통하여 지난 40여년간 우리에게 보여준 우정과 사랑과 믿음의 역정(歷程)은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보물이 되었다.
우리의 가슴에 영롱한 진주를 선물하고 선종(善生福終의 준말: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죽음)한 정 세실리아가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길 기도드린다.
<김광수 / 더우드,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