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318)-제45대 Donald J. Trump 대통령 (4)

2020-08-03 (월) 조태환/LI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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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ald J. Trump 의 부친 Frederick Christ Trump 는 그의 부친이 그가 열두살때에 사망하자 고등하교 시절부터 caddy, 인도청소부, 배달부등의 일을 하였었는데 그는 부동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Fred 는 통신교육으로 목수, 설계도 읽는법, plumbing, 석수, 전기배선등을 독학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건축자재를 수레로 운반하는 직업으로 일을 하다가 목수로 일하게 되었다. 그는 Pratt Institute 에서 공부를 계속하면서 18세때인 1923년에 모친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서 처음 집을 지었었다.

실은 그전부터 주택건축을 하였었는데 그가 아직 성년이 되기전이었기 때문에 모친 Elisabeth Trump 의 이름을 썼었다고 한다. Fred 는 이미 1926년 까지에 20채나 집을 지었었는데 1927년에 어머니와 함께 Elisabeth Trump & Son 이라는 회사를 만들어서 사업을 하였었다.


Fred 는 1927년에 개신교인들 로써 극우 백인우월 폭력주의자들인 Ku Klux Klan (KKK) 단원1천여명이 “미국에서 출생한 개신교인들” 이 “새로 이민온” 천주교인 경찰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는것에 항의하여 시위를 하다가 체포된 일곱명중의 한 사람이 었었는데 기소는 되지 않았었다고 한다.

당시 뉴욕시의 경찰관 대부분들이 새로 이민온 Irish 출신들이어서Irish Cops 라고 불리우는 천주교인들이 었음을 의미하는데 그 시절 뉴욕시의 반 천주교 민심, 새이민 배척등의 정서가 표출된 사건이 었었다고 생각된다. Donald 는 처음에는 부친의 체포를 인정 했다가 곧 부인 하였었는데 2016년의 대통령선거 에서 KKK 의 지지를 받은 Trump 와 KKK 의 인연은 이미 오래전 부터 계속 되었던것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Fred 는 미국의 대공항을 겪고 있던 1933년에 King Kullen Grocery 회사의 식품점을 모방하여 식품점을 건축한후 “Serve yourself and save” 라고 광고하는 Trump Market 으로 6개월정도 새로운 방법으로 활발하게 광고를 내며 영업을 한후 King Kullen 회사에게 팔았다.

그무렵 Brooklyn 의 어느 부동산 대부회사가 파산을 하게되자 Fred 는 동업자와 함께 차압직전에 이른 많은 부동산을 싼값으로 구입하였다가 상당한 수입을 얻었었다고 한다. 그는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짧은 기간동안에 뉴욕 부동산업계의 실력자로 올라서게 되었었다고 한다.

Fred는 1936년에 결혼한후 후일 연방고등법원 판사가 되었던 딸 Maryanne과 Fred, Jr., Elizabeth, Donald, Robert 등 5남매를 두었는데 그는 매우 엄격한 아버지로써 매일 큰딸에게서 동생들의 품행보고를 받은후 벌을 주기도 하였으며 자녀들에게 “통행금지 시간”을 지키도록 하고 욕설을 금지하였고 식사중 대화를 금지하고 lip-stick 도 못쓰게 하였으며 식사이외에 간식도 금지하였었다고 한다.

그는 큰아들 Fred, Jr. 가 조종사가 되기를 원하였으며 그를 일찍부터 깎아내리기 시작하였고 Donald 를 자신의 후계자로 키울 생각을 하며 편애하고 추켜 올렸었다고 한다. Fred, Jr. 는 42세에 알콜중독등으로 일찌기 사망하였다고 한다.

Fred 는 건축현장에 자녀들을 데리고 가서 빈병들을 수집하여 deposit 를 받아 오도록 하였으며 아들들에게는 신문배달등의 일을 하도록 하였고 일기가 좋지 않은 날에는 limousine 을 타고 신문을 배달하도록 하였었다고 한다. 자녀교육을 위한 일이었던지는 모를 일이지만 조금 과도한 양육방법이 아니었던가 싶은 생각이 든다.


Donald Trump 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누님 Maryanne 는 고등법원 판사직을 사직 하였었는데Donald 와 함께 재산공개를 해야만 될수도 있는것을 우려하여 사직하였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Donald 의 재산 내역문제가 언론에 대두된후 최근 얼마전에 나돌기도 하였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 Fred 는 미국동부 해안들에 있는 해군기지들 근처에 수많은 군인막사들과 garden apartments 를 건축하였다. 전쟁이 끝난후에는 Fred 는 귀향한 제대군인들의 가족들을 위한 중산층 주택들을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때에 Bensonhurst 와 Coney Island 등지에 2,700 채의 apartment 를 건축하였다. 그는 Brooklyn 에 총 27,000 여 채의 저소득층 apartment 와 주택들을 건축하고 Brooklyn 지역 부동산 신문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시작하였었다. 그는 뉴욕지역 부동산 거부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여러번 법률과 규정위반등으로 조사를 받았었으나 범법으로 기소되지는 않았었다.

1954년초에 Eisenhower 대통령과 다른 공무원들이 부동산업자들이 정부의 주택지원 자금을 악용하여 과도한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비난했었고 New York Times 에 계재된 폭리 부동산업자 35명중에 Fred 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Mafia 전력이 있는 동업자와 함께 상원조사 위원회에 소환되어 편법, 법률 악용등으로 부동산 투자에서 정부지원 자금을 폭리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었다.

한 예를 들어서 그들은 빈 땅을 35,000 불에 구입한후 자기들 소유의 회사가 그땅에 지은 연방지원 apartment 에 년 임대료 77,000 불로 99년간 임대계약을 맺는데 만일 apartment 회사가 파산될 경우에는 지불보증을 한 연방정부 FHA 가 그들에게 19억2천4백만불을 지불 해야 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 “미국판 봉이 Trump 선달”인것 같은데 Hudson 강을 팔아먹지 않은것은 다행이라고 봐야 할런지 …

Fred 는 1964년에도 New York 주의 주택지원 자금의 편법, 악용혐의로 뉴욕주의 조사도 받았었으나 “a shrewd character with a talent for getting every ounce of profit out of his housing project” 라는 혹평만 들은후에 법망은 피해 나갔었고 뉴욕주는 주의 주택건설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개탄 했었다고 한다.

<조태환/LI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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