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러와 여름 오두막집

2020-07-22 (수) 김영석 / 펜실베니아 맨스필드대학 음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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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G. Mahler)는 생애 대부분을 지휘자로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다. 함부르크 오페라 극장(1891-1896)이나 비엔나 국립극장(1897-1907)의 지휘자로 있으면서도 7~8월에 주어지는 여름휴가 동안에는 작곡에 전념할 수 있었다. 자신을 ‘여름 작곡가’ 라고 부르기도 했다.

두 달간의 여름휴가 동안 말러는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조용한 곳을 찾았다. 그리고 작은 오두막을 짓고 작곡활동에 전념했다. 말러를 위한 창작의 산실로 쓰였던 여름 오두막집 (Composing Hut) 세 곳은 오늘날까지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되어있다.

2019년 8월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에 참가하고 있던 나는 음악회가 없는 날을 골라서 말러의 첫번째 여름 오두막집으로 향했다. 그 곳은 잘츠부르크에서 약 45Km 떨어져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인 잘츠캄머굿(Salzkammergut)의 작은마을 슈타인바흐에 있는 오두막집은 호텔 로비에서 열쇠를 받아서 뒷문을 거쳐 해변 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아테(Attersee)라고 불리는 호수가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여름에 와서 작곡을 하던 말러를 위해 호텔주인이 뒤뜰 호수가 보이는 곳에 오두막집을 지어 주었다 한다. 방 한 개의 조그맣고 단순한 구조이며 책상, 의자 그리고 피아노가 전부이다.

1891년부터 7년 장기계약으로 함부르크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가 된 구스타프 말러는 이곳에서 교향곡 제2번 ‘부활', 교향곡 제3번, 그리고 초기 교향곡에 많은 영향을 끼친 ‘소년의 요술피리'의 일부를 작곡 하였다

나는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끝나고 다음 행선지인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리아나로 가는 길에 말러의 두 번째 여름 오두막집에 들렀다. 구스타프 말러의 두 번째 여름 오두막집에서 교향곡 4번, 5번, 6번, 7번, 많은 부분의 8번이 작곡되거나 마무리 되었다.

세 번째 오두막집이 있는 현재 Gustav Mahler Stube 라는 이름의 호텔. 말러의 마지막 여름 오두막집을 방문했다. 말러의 세 번째 여름 오두막집이 있는 호텔에는 작은 동물원이 딸려있는데 동물원 안쪽에 말러가 작곡을 하던 여름 오두막집이 있다.

1907년 비엔나 국립오페라를 사임한 말러는 변화를 찾아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로 향했는데, 1908년 한 시즌 동안 메트로폴리탄에서 지휘한 뒤 곧이어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제안을 받았다. 이후 말러는 1911년 죽을 때까지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지휘활동을 이어 나갔다.

말러는 비엔나에서 당시 유럽 음악계 최고봉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세월을 겪어야만 했다. 열네 명의 형제들 중 여덟 명이 어릴 때 죽었고, 남은 형제들마저 자살,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 모든 고통들은 말러의 음악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오늘날에도 우리의 가슴을 끝없는 심연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 같다.

수많은 영감을 불어넣어 준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산과 호수, 그리고 그의 오두막집을 둘러보면서 그곳을 거닐었을 말러가 느꼈던 자연에 대한 사랑과 경외감, 환희와 고통, 절망과 체념을 온 영혼으로 새겨 넣은 그의 음악들을 마음속으로 떠올렸다.

<김영석 / 펜실베니아 맨스필드대학 음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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