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에서 본 자살

2020-07-15 (수)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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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괴로웠으면 자살을 택했을까? 자살했기에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자살하는 게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하겠다고 하면서도 자살하지를 못한다. 그런데 자살해버린 사람들이 있다.

왜 자살을 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 A가 도둑질하고, 성희롱하고, 여자들을 다른 남자들하고 매춘하도록 알선했었다. 체포되었다. 창피를 느꼈다. 영창에 갇히어 고통을 받고 싶지 않아서, A는 자살했다.

A가 기독교신자라고 해서, 하나님이 천당으로 모셔갈까? 예수는 천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4계명(살인·음행·간음·거짓증언; 마태복음:19/28)을 범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모든 ‘생명’을 만들었다는 게 기독교이다. 하나님이 만든 생명 중, 하나를 당신에게 맡겨주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당신의 생명의 주인은, 당신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자살을 한다면, 하나님이 당신에게 맡겨준 바로 그 ‘생명’을 당신이 죽였기에 하나님은 분노하신다. 분노하신 하나님이, 자살한 당신을 천국으로 모셔가겠는가? 아니다. 당신은 자살했었기에, 죽어서 지옥에 가서 더 많은 고통을 받게끔 돼 있다.

불교는 어떤가? ‘살아있음’도 유한하고 또한 ‘죽어있음’도 유한하다. 삶과 죽음이 항상 윤회한다. 불교에서는 연속성을 말한다. 당신이 태아였다가 태아가 없어지고 아이가 된다. 당신이 아이었다가 아이가 없어지고 성인이 된다.

당신이 성인이었다가 성인이 없어지고 노인이 된다. 노인이었다가 노인이 없어지고 죽는다. 죽어 있다가 죽음이 없어지고, 업(karma)에 따라, 다시 태어난다. 해탈할 때까지 생사(生死)는 끝없이 계속한다.

불교에서는 인과응보라는 게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업을 만든다. 선행은 선한 업을 만든다. 악행은 나쁜 업을 만든다. 당신이 죽고 난 후, 업에 따라 당신은 지옥이나 동물, 혹은 천당이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불교에서는 선행이나 악행을 저지르면, 그에 상응한 과보를 꼭 받게끔 돼 있다.

도둑질하고 성희롱하고 그리고 여자들로 하여금 매춘하게끔 한 A가 자살했다고 해서 모든 죄가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죽을 때 그냥 빈손으로 가는 게 아니다. 당신이 저질러놓은 그 죄악을 다음 생(生)으로 가지고 간다. 다음 생에서 당신은 그에 상응한 죗값을 받게끔 돼 있는 것이다.

A는 지옥이나 동물로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 설령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해도 ‘나쁜 운명’을 갖고 태어나게끔 돼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자살하지 말라고 권한다. 그 대신 참회하고, 지금 이 세상에서 ‘받아야 할 고통’을 다 받으라고 권한다. 그러면 다음 생에서는 그만큼 좋은 운명을 갖고 태어나게 된다.

종교는 자살하지 말란다. 자살해서 이득 볼 게 하나도 없다. 죄를 지었으면 먼저 참회하고 처벌을 받으란다. 그러면 기독교신자는 천당에 가고, 불교는 다음 생에 좋은 복을 갖고 태어나게 된단다.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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