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린 모두 살아 숨쉬는 책

2020-06-04 (목) 이태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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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태양의 후예’ 송중기가 정-재계 여성 리더들의 모임 ‘미래회 바자회’에 그의 애장도서인 ‘아이처럼 행복하라(알렉스 김 지음 공감의 기쁨 2012년 3월 27일 출간)’를 기부했는 데 그 책의 판매가 급증했다고 한다. 이 책 제목만으로도 행복하지 못한 모든 어른들에게 너무도 절실한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독서 인구는 준다는데도 수많은 책이 계속 출간되고 있지만 어떤 책이 읽히는 것일까. 지난 4월 23일은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죽은 지 404년이 되는 날이었다. 유네스코는 이 날을 ‘세계 책의 날’로 정해 기리고 있다. 신(神)과 내세(來世) 중심이던 내러티브를 인간의 현세로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대표적인 서양의 작가가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라고 할 수 있으리라.

셰익스피어 작품의 주인공들이 주로 왕족이나 귀족이었다면, 성경 다음으로 널리 번역되고 2002년 노벨 연구소가 세계 주요 문인들을 상대로 한 여론 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책’ 1위로 뽑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다들 알다시피 어린 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편력 기사 돈키호테와 하인인 산초 판사가 함께 하는 수많은 모험이야기다. 세르반테스가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을 심사숙고해 보자.


“너무 정신이 멀쩡한 거야말로 미친 것인지 모를 일이다. 미친 일 중에 가장 미친 일이란 살아야 할 삶이 아닌 주어진 삶을 주어진 그대로 사는 일이다.”
그럼 살아야 할 삶이란 어떤 삶일까.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아이처럼 행복하게’ 사는 삶이 아니랴. 다시 말해 돈키호테처럼 살아 보기가 아닐까.

안영옥 고려대 서어 서문학과 교수의 번역서 ‘돈키호테’ 마지막 부분에 돈키호테 묘비명이 나온다. “그 용기가 하늘을 찌른 강인한 이달고 이곳에 잠드노라.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의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깨닫노라. 그는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니, 세상은 그가 무서워 떨었노라. 그런 시절 그의 운명은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음을 보증하노라.”

안 교수는 “돈키호테가 미쳐서 살다가 제정신을 찾고 죽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이 대목은 우리에게 심오한 삶의 교훈을 준다. 이성의 논리 속에서 이해관계를 따지며 사는 것이 옳은 삶인지, 아니면 진정 우리가 꿈꾸는 것을, 그것이 불가능한 꿈이라 할지라도 실현 시키고자 하는 것이 옳은 삶인지를 말이다.”고 썼다.

모든 아이는 돈키호테나 김삿갓처럼 우주의 나그네 코스미안으로 태어나는 거라면, 우리 모두 현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일깨워주고 있는 오늘날의 새로운 시대정신의 화신으로서 개명천지 코스미안 시대를 열어볼거나. 우린 모두 살아 숨쉬는,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삶의, 아니 우주의 책이니까.

이런 말도 있다. “우리의 삶이란 우리가 놓치는 것들까지를 포함한 수많은 기회들로 정의되고 한정된다. ” 오늘날 전 세계 온 인류가 겪고 있는 코로나 사태라는 이 엄청나게 큰 위기 또한 그만큼 엄청나게 큰 변혁의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할 일 아니랴.

서양에선 20세기 초엽부터 꿈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어 온 ‘lucid dream’이란 말이 있다.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꾸는 꿈을 일컫는데, 우리말로는 자각몽 (自覺太)이다. 우리가 밤에 자면서 꾸는 꿈뿐만 아니라 잠에서 깨어나 사는 우리 하루하루의 삶 자체가 자각몽이라 할 수 있다면, 우리가 아무 것, 아무 일에도 너무 집착하거나 지나치게 심각할 필요가 전혀 없으리라.

다만 내가 만나 접촉하게 되는 모든 사물과 사람을 통해 만인과 만물을, 아니 나 자신을 가슴 저리고 아프게 죽도록 미치도록 사랑할 뿐이어라.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각자는 각자 대로 살아 숨 쉬는,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삶의, 아니 우주의 책을 쓰고 읽는 것이 되리라.

<이태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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