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309)-제44대 Barack Obama 대통령(9)

2020-06-01 (월) 조태환 / LI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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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ama 는 상원의원이었을 때부터 석유류 연료의 남용으로 지구의 온난화가 가속되고 환경오염이 것잡을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져 가는것을 경고해 왔었다.
중국, 미국, 인도등 3개국이 지구 공기오염에 42% 나 책임이 있다는 비난 가운데 지구 온난화 방지를 협의해 오던 끝에 2016년에 전세계 195국이 참여한 Paris Climate Agreement 에 미국도 조인 하였다. 이 조약은 강제집행규정은 없지만 조약가입 국가들은 5개년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그 진행과정을 매년 보고 하도록 되어있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국도 석유회사들과 대기업들에게 여러가지 규제를 하여야만 하도록 되어있다. 미국같은 부유선진국들이 당연히 모범을 보이며 앞장섰어야 할일에 어렵게 국제적 합의를 도출해낸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구온난화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라고 억지를 써오던 Trump 가 2016년에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었다. Trump 는 대통령취임후 2017년 6월 1일에 미국은 탈퇴가 허용되는 첫해인 2020년 11월에 Paris Agreement 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통지하였다.

Obama 전 대통령은 Trump 의 탈퇴결정에 대해서 깊은 유감을 표시하면서 “비록 미국이 지도자적 역활을 하지 않고 현 행정부가 극소수의 몇나라들과 함께 후세들을 져버리는 일을 할지라도 저는 우리의 각주들과 시들과 기업체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오직 한덩어리인 지구를 보호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일것 이라고 확신합니다” 라는 성명을 하였다.


Africa 의 Libya 에 Muammar al-Gaddafi 라는 Adolf Hitler 에 못지않는 폭군이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그에 대한 이러한 평가가 서양, 주로 미국의 눈에 비친 모습이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군부독재자”로 외국들에게 널리 알려진 Mustafa Kemal Ataturk 가 많은 Turkey 국민들로 부터는 Turkey 를 Islam 교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서구화 시켜서 근대국가로 만들었다는 “공”을 독재자라는 “과”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것을 보고 놀랐던 일이 있었었다.

27세의 육군중위로서 군사혁명으로 집권한후 Libya 를 40년간 이나 철권통치한 Gaddafi 도 Libya 를 극보수적인 Islam 교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Italy 의 굴욕적인 식민지로 부터 독립시켰으며 서양인들의 꼭두각씨이 었던 왕을 축출하고 국유화 해버린 엄청난 석유자원에서 나오는 자금으로 교육, 의료를 개선하고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서 노력하고 전세계 Islam 국가들의 단결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맞서는 제3세력권 까지 설립해 보려는 당돌한 꿈까지 가졌던 인물이다.

그는 Israel 이 Palestine인들을 학대하는 불법국가라고 적대시 하였었다. Libya 식 극단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이루어 보고자 하던 과정에서 발에 걸리는 “반혁명분자”들은 외국에 까지 쫓아가서 암살하는 정도의 폭정도 했었었고 Libya 안에서는 그가 우상숭배화 되기까지 하였었다고 한다. 그는 1969년에 무혈 군사혁명으로 집권한후 2011년에 반정부 무력 국민봉기로 권좌에서 쫓겨나고 살해 되었었다. 그는 그를 반대하는 반정부군과 민간인들을 무자비하게 폭격하다가 NATO 군, 특히 미국의 폭격으로 패망 하였는데 그를 지지하던 무장잔존 세력들이 미국에 극도의 앙심을 품은채 여러 지역에 잔존해 있었다.

2012년 9월 11일에 J. Christopher Stevens 미국대사가 Benghazi 에 있는 미국 영사관을 방문하고 있었는데 Gaddafi 지지 무장반군들이 영사관을 포격하고 건물들에 방화하였다. 9월 11일은 2001년에 뉴욕의 World Trade Center 가 여개기들의 추락으로 폭파된 날이기도 하였었다. Stevens 대사와 함께 외교관 한명과 두명의 전투용병들도 사망하였다. 일설에는 Stevens 대사가 Benghazi 시내를 끌려 다니다가 사망했다는 얘기도 나왔었다.

미국은 발칵 뒤집혔었고 상하원과 기타 기관에서 열차례나 진상조사를 하였으나 영사관 습격동기, 범인들 조차 분명하게 밝혀지지 못하였다. 그 무렵 미국의 유태인이 제작한 영화로 Islam 교의 창시자 Muhammad 가 모욕적으로 묘사된것이 상영된적이 있었다고 하며 일설에 의하면 미국의 Benghazi 영사관은 CIA 가 Syria 반정부군에게 무기를 비밀공급하는 거점으로 쓰여진 곳이라는 얘기도 있었었다.

공화당측에서는 영사관이 국무성에 무장보호를 요청해 왔었으나 충분한 무장보호가 없었다고 주장하였고 민주당측에서는 Host Country 가 보호해 주지 않으면 영사관의 완전한 보호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 하였었다. 영사관 피습 당시의 국무장관 이었던 Hillary Clinton 은 진상조사 과정에서 오랜 시간동안 심문에 시달렸었고 FOX News 등의 보수계 언론들은 이 사건을 확대보도하였었다. 2016년 대통령 선거때에 Benghazi 피습사건으로 Hillary Clinton 은 계속 심각하게 비난을 받아왔었다.

Bush 43 의 중동정책이 지나친 친Israel, 반Islam 이라는 인상을 주었던것에 비하여서 Obama 는 대화와 협상을 시도하면서 필요에 따라 무력을 동원하였었다. 그는 Israel 의 빈번한 무력사용 위협을 자제하도록 하였으며 Israel 의 계속적인 Palestine 지역 정착 확대를 비난하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2011년에 UN 안전보장 위원회가 Israel 의 정착 확대를 비난하는 결의를 하고자 하자 미국은 veto 권을 행사하였었다.
Obama는 Israel 의 정책들에 대해서 가끔 비판적 이었었음에도불구하고 Israel 의 Zionist 운동을 미국의 민권운동에 비교 하면서 지지하였었고 Israel 이 생존방위권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의 정권초기에는 Israel 측과 자주 만나서 동맹관계를 재확인하면서 군사원조를 강화하기도 하였었다. Israel 의 Palestine 정책에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Obama 는 2016년에 UN 안전보장 위원회가 Israel 을 규탄하는 결의를 하고자 하자 미국은 veto 권을 행사하지않고 기권투표를 함으로써 결의안이 통과될수 있도록 하였다. Israel 의 Netanyahu 는 Obama 를 강력하게 비난하였었다.

미국이 오랜 협상끝에 Iran 과 핵무기통제를 규정한 Iran Nuclear Treaty 를 성공시키자 Netanyahu 는 노골적으로 Obama 를 비난하며 항의 하였었고 Obama정부말 1년여 동안은 미국과 Israel 간에 완전히 공식적인 대화가 두절되었었다. Trump 가 대통령취임후 곧바로 Iran 과의 조약을 일방적으로 폐기하여 버린것은 이미 말씀드린적이 있다.

<조태환 / LI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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