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경제 칼럼-기록은 기억을 이긴다!

2020-06-01 (월) 문주한/공인회계사
크게 작게
어제 내 사무실로 수표 한 장이 배달되었다. 어느 백인 변호사 부부가 고맙다는 편지와 함께 보내준 것. IRS와의 OIC(offer in compromise) 협상이 잘 끝난 덕분이다. OIC는 말 그대로 ‘나 돈 없으니, 20%밖에 세금을 못 내겠다’ 예를 들어서 그런 식인데, 그 변호사 부부에게는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왜냐하면 맨해튼 아파트 수십 채인 사람이 ‘돈 정말 없음’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기대 이상의 결과를 움켜쥐었다.

지난달에는 또 어느 식당 주인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선물을 하나 받았다. 세금 문제 때문에 큰돈이 은행에 묶였는데, 그것도 이틀 만에 내가 풀어줬다.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나는 지금 내 자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순전히 그 이유만은 아니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해보겠다.

IRS와 싸워서 이긴, 이 두 승리의 공통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내가 쓴 ‘당시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유서’ 덕분이라고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그들에게는 좋은 기록이 있었다. 그 고객들이 모아두었던 자료들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다. 난 그저 ‘밀땅’과 짜깁기를 잘 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잘 움직였을 뿐이다.


자, 이제 우리 얘기를 해보자. 지금 정부는 정신없이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부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잠깐만.. wait a minute!’ 하면서 태클을 걸어올지도 모른다. UI, PPP, EIDL 등에 대해서 먼 훗날,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어느 날, 조사와 감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그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음을,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즉 ‘그 당시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어느 유튜브의 ‘실업급여, 무조건 받아라.’는 방송만 믿고, 어느 회사 사장이 자격이 안 되는 UI를 정말로 신청해서 받았다고 치자. 나중에 문제가 되었을 때, 그 유튜버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을까? 정말 그러고 싶다면, 그 방송 화면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신의 순진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겨야 한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고 있지만, 내 말의 포인트는 세상의 그 누구도 내 말을 안 믿으려 할 때, 어떤 사소한 기록이 나의 진실을 밝혀줄 유일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문 닫힌 가게의 사진, 랜드로드와 주고받은 편지, 직원들에게 보낸 돌아오라는 이메일, 정부에서 받은 돈들의 입금 날짜와 사용 내역, UI(PUA, PEUC)와 600불의 추가 FPUC 신청, 이력서를 보냈거나 면접을 본 기록,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돈 빌려달라고 보낸 이메일, 비즈니스 계좌에 입금된 돈의 출처... 그런 모든 것들이 나중에는 나를 살리는 귀한 기록들이다. 좋은 기록은 천재의 기억도 이기는 법이다. 특히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은 더욱 더, 오늘의 작은 기록이 나중에 나를 살릴 수 있음을 명심하자.

<문주한/공인회계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