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전의 연기는 다시 타오르고…

2020-05-07 (목) 신응남 변호사 / 서울대 미주동창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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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430년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전쟁 2년에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에서 발병된 후, 인구 1/3의 죽음을 부른 무서운 역병이 있었다. 그리스인의 의료수준은 높았고,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를 배출한 민족이다. 하지만 빈부 차 없이 퍼져간 역병의 치료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파르테논 신전은 신의 가호를 비는 부르짖음과 절규로 가득 찼고, 희생 제물을 태우는 연기가 아테네 하늘로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도시는 절망감과 무정부 상태로 가득 찼다고,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생생히 기록했다.

1347년 상선 한 척이 시실리아의 메시니 항에 당도했고, 선원 모두가 죽었으며, 이것이 유럽 흑사병의 시작이었다.
300여년 후, 1665년 봄 런던 외곽에서 발생하여 퍼진 흑사병은, 9월초 한 주에 7,000명 사망자를 내면서 정점에 달했다. 국왕 찰스 2세와 의회는 옥스포드로 피난을 떠나며 런던을 봉쇄했다. 그 역병은 인구 1/4인 10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후 잠잠해졌다.
까뮈의 ‘ 페스트 ’에서, 오랑시에서 쥐들의 떼죽음에 이어 페스트가 인간을 덮쳤다. 오랑시는 차단되었고, 탈출하려던 랑베르 기자는 뒤늦게 역병 진료소에서 환자 치료팀에 합류한다. 이듬해 1월 페스트로부터 해방된 후, 의사 리유는 다음을 상기한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어딘가에 살아남아 있다...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올 것이다.”

금년 1월에 중국 후안에서 시작한 코로나 전염병은 3월엔 미국에 창궐하여, 현재 거의 7만여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불야성 문명도시 뉴욕은 유령의 도시로 바뀌었고, 앰뷸런스의 날카로운 싸이렌 소리는 공포로 밤하늘을 뒤덮었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울 준비가 안되어 있는 정부는 우와좌왕했다. 무력한 백성들은 숨죽여 이 죽음의 공포가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운명을 속수무책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허탈함과 절망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병원 응급실은 살려달라는 외침으로 아비규환의 지옥을 연상케 했고, 기본적 의료기 공급 부족에 의료인들도 감염에 노출되어 희생되는 공포의 시간을 체험했다. 브루클린 한 장의사는 길가에 일반 트럭을 대놓고 쌓아놓은 시신으로 인해 썩는 냄새가 온 동네를 뒤덮었다.

16세기 이후, 인류사는 전쟁과 착취 및 억압의 제국질서 속에 유지돼왔다. 모든 지구상의 제국은 군사적 정복을 이루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 왔다. 1945년 7월 네바다주 사막에서 미국은 핵무기실험에 성공했다. 마침내, 인간은 수천 년 지켜온 문명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가공할 능력도 지니게 되었다.

21세기 들어서서 인류는, 생명공학, 인공지능, 우주개발 등에 몰두하여 신의 영역을 능가할 신인류를 지양했다. 인간 자신들은 진정 적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과학 만능의 세계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들은 적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살고 있었다. 인류를 멸망시킬 힘은 키워서 보유했지만, 전염병으로부터 지킬 준비와 능력도 전혀 준비하고 있지 않음을, 우리 모두는 이번 코로나 Outbreak의 무고한 희생들을 통해 처절하게 인식한 것이다.

인류 문명을 지켜야 할 책임을 망각한 호모 사피엔스! 신들의 경지에 오른 호모데우스! 이보다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어쩌면 인류의 적은 우리 인류 자신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신응남 변호사 / 서울대 미주동창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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