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위기 국면의 불평등과 반이민

2020-05-05 (화) 차주범/민권센터 선임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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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자체는 불평등하지 않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확산된다. 다만 사람이 구축한 사회 구조가 문제다.
뉴욕시가 발표한 지역별 확진자 통계가 증명한다. 유색 인종, 이민자 밀집 거주 지역이 월등히 높다. 서민과 극빈층이 모여사는 곳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건강보험이 없다.

검진과 치료도 용이하지 않다. 돈 없으면 죽으라는 미국식 의료체계의 취약 계층이다. 질병과 계층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현실이다.
연방 정부는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근거 없는 낙관을 늘어놓았다. 이후 코로나바이러스는 급속히 전국을 휩쓸었다. 뉴욕이 최대 피해주다. 연방 정부는 전염병의 확산을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한다.

트럼프는 살균제를 치료제로 사용하라는 황당한 소리를 지껄였다. 사태 초기에 의회보고를 미리 접한 일부 연방 의원들은 보유 주식을 투매했다. 책임의 주체인 정치인들은 무능력과 이기심을 과시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미국의 맨 얼굴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거버넌스와 위기대응 체계의 부실을 드러냈다. 주별로 알아서 극단적 방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재택 대기 행정명령으로 사회, 경제가 준 마비 상태에 돌입했다.
행정명령은 전염병 확산 방지의 고육지책이다. 당연히 부작용이 발생했다. 언제나 자본은 노동을 모욕하고 노동자들을 무시했다. 그런데 노동력을 보유한 사람들이 집에 머물며 위기는 심화됐다.


연방 정부는 부랴부랴 긴급 경기 부양책을 마련했다. 일사천리로 연방 의회에서 법률을 마련하고 대통령이 서명했다. 미 역사상 최대 규모라는 2조 달러를 풀었다. 경기 부양책의 취지는 좋았다. 실행은 빛 좋은 개살구로 귀결됐다. 정치인, 은행과 대기업의 합작품인 법률의 허점 때문이다.
정말 지원이 절실한 소상인들은 일부만 혜택을 받았다. 수수료를 받고 PPP(종업원 급여 보호 프로그램) 신청을 대행한 은행들은 대형 고객을 우선 대우했다. 1,000만 달러의 대출을 받은 햄버거 프랜차이즈 쉐이크쉑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반환했다. 41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막대한 기부금도 유치하는 하버드 대학은 860만 달러를 받았다.

트럼프 정권은 위기를 지렛대로 반이민 책동도 불사했다. 외국인 입국 60일 금지 정책을 시작했다.
이민문호 축소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유 방침이다. 이참에 바이러스를 핑계로 관철시켰다. 그러면서 농장 노동자 유치는 예외로 두었다. 지지 세력인 대농자주들을 의식했다. 투자 이민도 금지에서 제외했다.
요약하면 돈 되는 이민자들만 소수로 선별해서 수용하겠다는 의도다. 나머지는 배제와 탄압의 대상이다. 트럼프는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허위의 명분를 내세웠다.

사실은 국가 권력이 자행하는 혐오범죄다. 미국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반복되던 현상이다. 이민자를 공공의 적으로 모는 관행이다. 또한 4년 전에 재미를 본 대선 전략의 일환이다. 이민자 때리기로 지지 기반 강화에 골몰하는 행태다.
이번 사태는 분명한 교훈을 제시한다. 이 나라 미국은 근본 시스템부터 개혁이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고수하는 불평등, 반이민 정책은 바이러스보다 더 해롭다. 바이러스는 결국 물러간다. 그러나 숱한 사람들과 이민자는 여전히 국가 정책의 영향하에 살아가야 한다. 바로 이 점이 오는 11월 대선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시사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차주범/민권센터 선임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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