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305)-제44대 Barack Obama 대통령(5)

2020-05-04 (월) 조태환 / LI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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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 Biden 부통령 (계속)
Joe Biden 이 2020년의 강력한 민주당 대통령후보가될 가능성이 큰것을 알고있던 Trump 는 그의 개인 변호사인 Rudy Giuliani 를 시켜서 중국과 Ukraine 에게 Joe Biden 의 아들 Hunter Biden 의 “불법적인 활동”을 조사하라는 압력을 넣었었다.
특히 Ukraine 에는 주 EU 미국대사, 주 Ukraine 미국대사까지 동원해서 Hunter 를 조사하겠다는것을 Ukraine대통령이 사전에 공표해야만 미국 국회가 이미 입법한 미국의 군사원조를 지불할 것이라고 까지 위협을 한것이 Trump 가 탄핵을 받은 이유중의 하나가 되었었다.

Biden은 본처 소생의 두 어린 아들들의 권유속에 상처한후 5년만인 1977년에 현재의 부인 Jill Tracy Jacobs (교육학박사) 를 만나서 재혼하여 딸 하나를 두었다.
그는 1973년 1월에 연방상원의원으로 취임한 이후 연속으로 다섯번 더 당선이 되어서 36년간 상원의원을 하였는데 2008년 총선때에는 Obama 의 부통령으로 출마하면서 Delaware 주법이 허용하는대로 연방상원의원으로도 동시에 출마하여 일곱번째로 당선되어 7선의원으로 2009년 1월 초에 상원의원으로 취임한후 1월 15일에 상원의원직을 사임하면서 부통령 으로 취임하여 Delaware 주지사가 민주당원을 그의 후임으로 상원의원에 임몀할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재임동안 계속 가장 가난한 상원의원들중의 한사람이었었다고 한다. 그는 상원의원 법정년령 하한선인 30세때에 당선됨으로써 미국역사상 여섯번째의 최연소 상원의원이 었으며 만일 그가 7선후 42년간을 다 채웠으면 미국역사상 18번째의 최장수 상원의원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후 군대에 가고자 하였으나 천식이 있어서 신체불합격이 되었었다고 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말을 더듬었었는데 20대 중반 에는 더욱 심하여 졌었으나 거울앞에서 시를 낭독하는등의 노력으로 바로 잡았지만 상원의원을 할때에도 가끔 말을 더듬는 경우가 있었었다. 그러나 그가 보통때에 속사포 같은 달변으로 빨리 말하는것을 보고 그가 청년때까지 말을 더듬었다는것을 짐작할수는 없다.
Biden 은 출혈로 뇌수술을 두번 받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정치인을 비꼬는 악담중의 하나가 “골빈놈” 이라는 의미쯤의 “brainless” 라는 용어가 있는데 Biden 의 뇌수술을 했던 의사가 “나는 Biden 이 분명히 뇌를 가진것을 확인했었다” 라고 농담을 하였었다고 한다.

공화당이 강세였던 Delaware 주의 공화당 연방상원의원이 은퇴하게되자 Biden 은 민주당후보로 첫번 출마하였는데 선거자금도 없었고 누이동생이 선거사무장이고 형제등 가족이 선거운동원으로 초라하게 출발하였는데 여론조사에는 공화당후보에게 30% 나 뒤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는 좁은 Delaware 를 일일히 찾아다니고 강력한 노조인 AFFL-CIO 의 지지를 받았었고 그의 “젊음”이 장점이 되었었다.
그는 선거공약으로 “Vietnam 전쟁의 종식, 환경개선, 민권보호, 대중교통 확대, 공평한 세금제도, 국민건강보호, 구태의연한 정치의 개혁” 등등을 내놓았었는데 그는 사실상 장기의 상원의원 재임중에 그때의 성거공약들을 지키려고 노력했었다.

그는 낙선할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상원의원에 11월초에 당선되었는데 한달후인 12월 중순에 그가 상원의원으로 취임도 하기전에 교통사고로 부인과 딸이 사망하고 두 아들이 중상을 입은 비극을 겪고 한동안 종교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갖었었다고 한다.

정치인들은 때로 “실상”이 알려지기 보다는 언론매체가 전하는 “허상”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한다. Biden 도 불리한 허상이 더 많이 알려진 인물이었다고 생각된다. Senior Gentlemen’s Club 이라고도 할수있는 연방상원에서 풋내기인 Biden 은 Edward Kennedy 와 함께 약방의 감초처럼 많은 일에 참견하고 더러는 “경박하다” 라고 생각되는 진보적인 주장을 아주 빠른 말씨로 언론에 내놓았었다.
언론매체들은 그를 철이 덜든 신병으로 묘사하기가 일수이었고 “말실수가 많은 사람” (put the foot in the mouth) 라고 까지 평하였었다.

그러나 그는 상원의 법사위원장, 외교위원장 등의 요직을 거치면서 아주 비중이 높은 중진의원이 되었었고 압력에 쉽게 굴하지 않는 척추가 강한 상원의 지도자가 되었다. 공립학교의 인종차별금지를 주장하면서도 인위적인 인종통합을 위한 busing 에는 적극 반대하였었고 자신의 종교가 정치에 과분한 영향을 주어서는 않된다는 신념에서 천주교인 이었음 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절”에 찬성하였었다.
이 문제 때문에 자기 고향 성당의 신부가 Biden 에게 성만찬을 주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공화당의 법안에도 찬성 하였었다고 한다.

미국의 “부통령”이란 자리는 “잘하기도” 어려운 자리이고 중진정객 노릇을 하던 사람에게는 “어색하고 초라한” 자리이기도 하다. 부통령은 대통령이 맡겨주는 일 이외 에는 자기의 전결로 할수있는 일이 거의없고 대통령들은 부통령이 너무 자주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그늘속에서 조용히 지내주기를 원한다고 할수 있는것 같다.
부통령은 자신의 능력도 있고 시대적인 여건이 잘 맞아 떨어져주면 부통령자리를 대통령으로 올라가는 “Stepping Stone” 으로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부통령들에게는 부통령직이 “Dead End” 가 된다. 그래서 대통령 다음쯤으로 막강한 정치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원의 중진의원이 부통령이 되는것은 “강등”이라고 생각될수도 있다.

2008년의 대통령후보 공천경쟁에서 Barack Obama 와 Hillary Clinton 이 열띤 대전을 시작한 초장에 Biden 도 출사표를 내던졌다가 일찌기 퇴장하였었다. 개혁적인 생각, 뛰어난 웅변등으로 Clinton 을 추월하기 시작한 Obama 에게는 몇가지의 약점들이 있었었다.
우선 그는 “상원의원 4년” 이란 경력밖에 없어서 공화당의 McCain 이라는 중진 상원의원을 맞상대 하기에 역부족이었으며 외교와 국가안보에 대한 경험도 별로 없었다. 미국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후보라는 영예는 거의 본능적으로 백인들에게 “인종차별”이라는 동물적 반응이 발동하도록 만드는 것이기도 하엿다.

Obama 는 비밀리에 Biden 과 회동하여 Biden 이 자기 정부의 중요한 직책을 맡아줄 것을 제의하였었으나 Biden 은 거절하였었다고 한다. 그 얼마후 NBC 와의 대담에서 Obama 정부의 부통령으로 일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Biden 은 만일 그러한 제의가 오면 고려해 보겠다고 대답하였다.
그후 Obama 와 회담을 갖고 그의 제의로 Obama 의 running mate 가 되었다. Biden 은 공화당의 McCain 대통령후보 보다 외교, 국방등에 더 경륜이 있던 중진 선배 상원의원으로써 Obama 를 대신하여 권위를 가지고 McCain 을 반박할수가 있었다.

실은 Biden 과 McCain 은 서로 소속 정당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존중하고 친한 사이었었 다고 한다. McCain 의 장례식에서 Biden 은 조사를 하고 관을 운구한 사람들중의 한사람이 었었다.
Biden 은 백인 노동계층과 농촌지역 거주자들이 Obama 에게 투표하도록 독려 하였으며 천주교인들의 투표를 받는데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공화당 강세지역들과 주공천선거에서 Obama 가 많이 득표하지 못했던 주들을 찾아다니며 선거운동을 하였었다.

<조태환 / LI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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