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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등] 부처님 오신날

2020-04-30 (목)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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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부처님 오신날을 석가탄신일이라고 썼던 적이 있다. 석가탄신일이 국경일로 정해질 당시의 법정 이름였던, 기독탄신일 과의 연장 선상에서 자연스레 그리 되었다. 아다시피 석가와 기독은 석가모니와 그리스도의 원어에서 온 음역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석가탄신일이 기독탄신일 보다 나중에 국경일로 정해졌단 게,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의아하다. 나라에서 지은 이름이야 뭐든, 음력이 더 많이 쓰이던 세상에선, 초파일이면 온 나라에 그냥 뜻이 통했다. 그래선지, 불가에서는 나라법이 정한 석가탄신일 명칭이 불교 뜻과 맞지 않아, 그 공식 명칭을 부처님 오신날로 바꿔줄 것을, 과거 오래 전부터 정부기관에 요청하긴 했지만, 법이 뭐라 부르든, 별로 개의치 않았던 거 같다. 사실은 아닐지라도, 세속법에 그악스럽지 않은 불교의 무심한 성격도 한몫 했을 것이다.

증명이라도 하듯, 오래 주장한 세월이 무색하게도, 공식 명칭이 바뀐 건 불과 3년 전 일이다. 혹자는 석가탄신이면 어떻고, 부처님 오신날이면 어떠냐 하겠지만, 기독탄신일은 크리스마스라 불러도 그 뜻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석가탄신일과 부처님 오신날은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샤카, 석가 문중의 모니, 성인이 태어난 날은, 한 인간이 태어났다, 이다. 그 분이 나중에 훌륭한 성자가 되었다, 란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단 한 분 만도 아니고, 서가모니 만을 뜻하지도 않는다. 부다, 즉 부처는 인간,이란 범주를 넘은 형이상학적인 얘기다. 엔라이트먼트, 깨달음, 지혜를 뜻한다. 그래서, 부처님 오신날이란 것은 석가모니 그 당자, 부처님보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그 지혜에 초점이 맞춰진 명칭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걸 모르고서, 불교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마치 신처럼 믿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자리에서 나온 온갖 서술이나 평가들은 어차피 틀린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사과 아닌걸 사과라 믿고 진실이라 피력하는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런 자리에 서서 부처를 논하는 이들이 세속에는 많다. 부처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절에 있는 그런 불상도 아니요, 신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다. 사과 아닌걸 사과라 우기던 삶에서 사과가 아니란 걸 확실히 알아챈 그 순간, 그 밝음,을 뜻한다. 그 밝음을 깨달아 안 이는 누구나 부처이다. <대반열반경>에 나오는 '일체중생 개유불성'이란 말이 그 뜻이다. 모든 생은 다 부처 성품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다 부처라는 얘긴 아니다. 서가모니 부처님처럼 깨쳐 알아, 부처되기도 도대체 쉽지 않지만, 그 분 처럼 살기도, 자비롭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앞으로도 서가모니처럼 위대한 부처님이 또 다시 출현하실지는 과연, 모르겠다. 그러나 그 가르침 만은 영원할 것이다.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깨치신, 지혜의 빛, 그 자체는 사라질 수도, 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후세 중생들이 그 밝음을 깨쳐 알아, 생을 밝게 살 수 있도록, 몸소 가르치고, 실천의 삶을 보여주신 서가모니 부처님. 그 분의 위대한 뜻을 기리는 날이 부처님 오신날이다. 그 법을 따라 살고 있는 불제자로서 얼마나 감사한 날인지 모른다. 올해는 코로나로 초파일 축제가 묻힐 뻔 했다. 다행히 올핸 윤 사월이 들어, 5월에 초파일이 또 있다. 그때는 축제를 열 수 있길 바란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재발심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음 한다. 발심이란 깨달음의 삶을 위해, 부처님 법에 귀의 한다는 뜻이다.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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