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 칼럼> 요한계시록 휘날리며

2025-04-16 (수) 05: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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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준식 목사/ 밀피타스 세화교회

요한계시록을 휘날리며 살아간다는 건, 폭력에 맞서 저항한다는 말이다. 조용히 믿음을 지키는 것만이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로 가는 세상의 어둠을 향해 분명히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단순한 예언의 책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의 절규와 정의에 대한 갈망이 묻어 있는 저항의 기록이다.

요한계시록은 묵시 문학이다. 묵시 문학은 절망적인 현실 앞에 선 이들에게 ‘지금’이 전부가 아님을 상징으로 보여주는 하나님의 위로다. 상징과 은유, 그리고 천상적 계시를 통해 선과 악의 본질을 폭로하고, 궁극적인 승리가 누구의 것인지 묻는다. 요한은 로마 제국의 폭력 앞에 침묵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믿는 이들이 겪는 고난을 하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며, 역사의 어둠을 찢고 들어오는 하나님의 빛을 전하고자 했다.

요한계시록 9장에서 여섯 번째 나팔이 울린다. 유브라데 강 너머에 결박되어 있던 네 천사가 풀려난다. 이것은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라는 역사 속의 폭력 제국들을 상징한다. 그들은 화염과 연기, 유황으로 약자들을 짓밟고 죽였다. 그러나 이 폭력 앞에 요한은 침묵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이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제단의 네 뿔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통해 말한다. 이 책은 단순히 미래의 공포를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고통과 불의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묵시 문학은 늘 그랬다. 고난의 현장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그 고통의 원인을 밝히며,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말하는 문학이다. 요한계시록은 그저 “종말이 온다!”는 겁박의 책이 아니다. 오히려 폭력에 맞서 신앙을 지키는 자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선포이다.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는 추상적인 종말론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 한복판, 권력의 탐욕과 억압, 거짓과 침묵 속에 신음하는 이들과 함께하신다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이 책은 인간의 역사가 권력자들의 손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하나님은 약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시며, 결국에는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신다. 그렇기에 요한계시록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침묵을 거부하게 만들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 다시 세우게 한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올바로 읽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현실의 제국과 같은 폭력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군들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일본 제국에 맞섰듯, 그리스도인은 요한계시록을 휘날리며 지금 여기의 불의에 맞서야 한다. 일본 총독부는 조선인이 요한계시록 읽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유는 분명하다. 성경의 요한계시록이 제국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는 이들에게 소망과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을 휘날리며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거대한 사건 앞에서만 저항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자리에서도 우리는 폭력에 맞서야 한다. 혐오의 말이 난무할 때 침묵하지 않고, 거짓과 조작이 난무할 때 진실을 말하며, 권력이 약자를 짓밟을 때 그 곁에 서는 것. 그 모든 행동이 ‘요한계시록을 휘날리는 삶’이다. 요한은 글로 저항했지만, 우리는 말과 행동, 그리고 공동체의 연대로 저항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는, 결코 무기력하지 않다. 그 나라는 지금도 시작되고 있으며, 하나님은 오늘도 그 일을 감당할 사람을 찾고 계신다.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폭력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권력자가 헌법 위에 군림하려 들고, 무고한 국민들에게 국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폭력을 저지른다. 요한계시록을 읽는 그리스도인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권력이 곁에 설 자리는 없다.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말한다. 지금도, 앞으로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폭력에 침묵하지 않고, 빛 가운데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폭력에도 저항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국가의 평화를 가져오는데 가장 앞장서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평화를 지켜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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