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룩한 그 이름 어머니

2020-04-27 (월) 최효섭 /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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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은 북한 땅 해주이며 나는 해방 후 곧 서울로 가서 학교에 다녔다.
나의 어머니는 나를 보기 위하여 38선을 세 번이나 왕래하며 서울을 다녀가셨다. 아무리 초창기라지만 38선 초소에는 미군과 소련군들이 있어 멀리 돌아 경계선을 건너야 하였다. 나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기 위하여 그 멀고 위험한 길을 다니셨던 것이다. 세상에 여러 종류의 사랑을 말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가히 결사적이다.
부산 피난 시절 나는 어머니와 둘이서 작은 하꼬방(상자로 만든 임시 가옥)에 살았다.
물론 부엌은 없고 마당에 솥을 걸고 취사를 하였는데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그 비를 다 맞으며 밥을 짓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 사랑 저 사랑 사랑 논의가 많지만 어머니의 사랑에 비교될 큰 사랑은 세상에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가장 뚜렷한 자국을 남기는 것은 어머니이다. 서양 속담에 “악마가 인간으로부터 박탈하는 마지막 자국은 어머니의 자국이다.”라는 말이 있다.
책이나 혹은 어떤 사람으로 부터 받은 영향도 악마는 쉽게 박탈할 수 있지만 어머니로 부터 받은 자국은 가장 깊기 때문에 악마도 빼앗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어머니가 방향을 인도한다”(Mothers direct the traffic)는 속담은 어머니가 주는 영향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폭군 네로 황제의 어머니는 살인자였다.
나폴레온 황제의 어머니는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정력가였다. 시인 바이런의 어머니는 무엇이나 최고를 해야 성미가 차는 여자였다.
조지 워싱턴의 어머니는 한없이 경건하고 순박한 여성이었다.
감리교의 창십자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는 18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한명 한 명에게 개인지도를 한 유명한 어머니였다.

레이건 대통령의 어머니날 명연설 중의 일부를 소개한다. “200년동안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를 후세에 전달한 공로자를 말한다면 교사보다도 먼저 미국의 어머니들을 들어야 할 것이다.
나 자신만 해도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나의 어머니였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오늘날도 취중운전 방지운동, 마약과 환각제에 대한 투쟁, 심신장애아동 보호운동 등 여러가지 위대한 사회운동의 앞장에 서있는 것이 미국의 어머니들이 아닌가!” 어머니보다 더 많은 영향을 주는 스승은 없다.


뉴욕 항구에 우뚝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이것은 프랑스의 조각가 바톨디(Barthodi)의 작품인데 어떤 여자를 모델로 할까 하고 오래 고민하다가 결국 자기의 어머니를 모델로 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는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장래의 행복까지도 약속하여 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향한 사랑은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최초로 들어가는 학교는 어머니라는 사랑의 학교였다. 어머니는 최초의 스승이며 최고의 스승이다. 어머니의 얼굴은 우리들의 교과서였고, 어머니의 무릎은 우리들의 교실이었으며 어머니의 말씀은 우리를 키운 영양소이고, 어머니의 가슴은 우리들의 천국이었다. 어머니의 눈길이 우리들의 고향이 아니었던가!

어머니는 마지막 까지 내 편이고, 나의 옹호자이고 나의 변호사이다. 모두가 나를 의심해도 어머니만은 나를 믿는다. 모두가 나에게 실망해도 어머니만은 나에게 끝까지 희망을 가지신다. 모두가 항복해도 어머니만은 계속 나를 위하여 싸우며 포기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파도 파도 마르지 않는 샘이다.
세상에 보기 흉한 어머니(ugly mother)는 하나도 없다. 새들은 불구가 된 새끼를 둥지에서 떨어뜨린다. 그러나 어머니는 부족한 아이일수록 더 사랑한다. 어머니는 재봉사가 되고, 요리사가 되고, 운전기사가 되고, 상담자가 되고, 청소부가 되고, 동무가 되어주셨다.

<최효섭 /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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