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로나19 백신을 기다리며

2020-04-22 (수)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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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와 미시간과 텍사스를 거쳐 지금까지 13년째 뉴요커로 살고 있지만 세계의 심장이라 일컫는 뉴욕의 거리가 이처럼 황량하게 변한 모습은 정말 처음 본다.

팬데믹이 강타한 뉴욕은 마치 유령의 도시와 같다. 의료계에 의하면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에 국지적 방역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백신 개발만이 지름길이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백신에 얽힌 법률문제를 조명해본다.

4월 8일자 워싱턴포스트지는 코로나19 백신의 임상실험 첫 단계가 시작되었다고 희망적 뉴스를 보도했다. 백신의 원리는 미약한 균을 미리 인체에 주입하여 사람 몸이 스스로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도록 항체를 만들어주는 것인데 18세기 후반 영국의 시골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처음으로 개발했다.


에드워드는 당시 공포의 대상이었던 천연두가 소를 키우는 사람들에게서는 거의 발병되지 않는다는데 착안, 우두균을 사용했기 때문에 암소를 뜻하는 라틴어 vacca에서 vaccine이란 용어가 유래되었다. 이후 저온 살균법으로 유명한 파스퇴르와 같은 과학자와 의사들이 폐결핵, 소아마비, 디프테리아, 파상풍, 홍역 등의 백신을 지속적으로 개발한 덕분에 인류는 이런 질병의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한 때 미국에서 너무 잦은 소송문제로 백신 개발과 제조의 명맥이 끊길 뻔한 소동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1905년, 연방대법원은 제이콥슨 대 매사추세츠(Jacobson v. Massachusetts) 사건을 통해 공공보건을 위해 개인의 자유는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국가가 국민들에게 예방접종을 의무화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모든 의약품이 그렇듯 백신 역시 부작용이 있어 심할 경우 앨러지 반응 등으로 죽음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파상풍(Tetanus)과 디프테리아(Diphtheria), 백일해(Pertussis)를 예방하기 위해 개발된 백신(줄여서 T-D-P)이 접종대상인 아이들의 뇌에 영구적인 손상을 준다는 논쟁이 일어 T-D-P 제약사들을 상대로 소송이 끊이지 않았다.
문제는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배심원과 판사들이 툭하면 원고측 손을 들어주다 보니 결국 손해배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제약회사들이 백신 생산을 포기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그 결과 1985년 T-D-P 미국 제조사는 단 하나만 남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백신 공급부족으로 가격이 폭등하는 또다른 시장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미 의회가 꺼내 든 것이 연방 백신피해 보상제도(National Vaccine Injury Compensation Program, 줄여서 NVICP)였다.

즉 이전에는 피해자들이 제약사의 과실을 증명해야만 했는데 NVICP 시스템 후에는 정부 지정 백신을 맞았다는 사실과 부작용 등을 간단하게 증명하여 제약사 대신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면 조속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개선됐다.

이와 함께 제약회사에는 백신의 부작용으로 사망 시 최고 25만달러 등 책임 상한선을 정해 배상부담을 경감시켜 주었다. 다시 말해 정부가 중간에 개입하여 국민들의 집단면역으로 공공보건을 유지하고 한편으로는 제약회사들을 보호하여 백신의 안정적인 공급도 가능하게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준 것이다.

하루빨리 백신이 개발되어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는 마스크를 훌훌 벗어 던져 버리고 뉴욕의 도심이 예전처럼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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