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가격리 중에

2020-04-10 (금) 김자원/ 뉴욕불교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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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앰뷸런스 소리에 잠을 못이뤄요.’ 거의 쉬지도 못하고 하루 14시간 1, 17시간 환자를 돌보는 의사인 딸이 걱정이다. ‘날마다 옷 세탁해서 갖다주고 먹을 것 나르고 있어요. 딸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말끝이 흐려진다. 어머니의 절절한 호소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어떤 환경이든 적응 잘한다며 강제 자가격리지만 현재시간 여유롭게 보내는 자신이 괜찮구나 했다. 처음 며칠은 한가함이 익숙하지 않았다.

이 시간에 사람들과의 소통을 그동안 비디오 요가를 요청했던 이들에게 해봐야겠다. 그러기 전에 시간 나면 하려던 옷장, 책장, 서랍, 서류 등을 정리해야겠다. 이삼일이면 충분 할 테니까. 정리하는 동안 교육이나 시사프로그램, 음악이든 유튜브를 틀어놓고 하면 무료하지 않겠지. 방송 보면서... 정리하는 손길은 멈추고 프로그램에 시간을 보낸다. 서랍에서 꺼내놓은 서류. 옷가지, 책. 방안에 가득하다. 발 디딜 틈이 없다. 정리하려면 이런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다며 자위한다.


‘별과 은하의 기원’ 에서 태양은 600억 개 별 중 특별 할 것 없는 작은 별이다. 180억년의 세월이 한 인간이 되는데 필요하다. 광활한 우주! 계속 빠져드는 동안 방안 가득한 책, 옷, 서류더미와 지내는데 익숙해졌다. 뭐하고 지내느냐는 전화에 ‘ 정리 중’이라는 답을 계속하고 있다. -모든 것은 확률적으로 밖에 답을 할 수 없다 - 는 먼 우주여행을 끝내야 했다.
각오하고 모든 유튜브 보는 것을 중단했다. 정리에 집중 했다. 옷과 책은 쉽게 진행됐다. 여기저기 꽂아 놨던 노트와 서류만 정리하면 끝난다. 오래된 주소록을 정리하면서 참 많은 인연들과 함께한 세월을 가늠해본다. 한 분 한 분의 눈빛이, 미소가 떠오른다. 행사마다 한 묶음씩 별도로 모아둔 것 열어본다.

잠시 그 당시 철부지 시절의 자신이 오버랩 되면서 웃음이 난다. 코끝이 시큰함도 함께한다. 컴퓨터로 직접 만든 눈에 익은 카드가 한 무더기 쏟아진다. 주소와 우표까지 붙여진 것들이다. ‘고맙다’는 메모를 따로 적어서 보내려 했었는데 그만 보낼 시기를 놓친 것 기억난다. 잠깐 숨을 고른다. 아마 그 마음은 전달되었으리라 위로해본다. 보이는 것만으로 가늠하는 현실의 인간관계. 가끔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 나는 안다. 보다 더 깊은 귀한 마음의 흐름. 그것을 지니고 있음이 진정한 만족이리라. 대충 방 정리가 되었다. 시간이 있으니 오랫만에 걸려온 지인과의 전화통화도 여유가 있다.

‘수술하신 어머님을 집에 모시고 있다. 경과가 좋아 안심하며 잘 지낸다. 딸이 병원일로 집에도 못오고 있다’며 헌신하는 의료관계자들의 힘든 상황을 알린다. 앰뷸런스 소리에 깜짝 깜짝 놀랜다는 그녀. 그 절실한 마음이 전해온다. 지금 이렇게 내가 편하고 여유있게 보내는 시간이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한 사람 한사람의 안위를 위해 관계된 수많은 인연들.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그 수고로운 고마운 인연들에. 고개 숙인다. 누군가를 위한 기도! 탐.진.치.삼독에 찌든 온 마음을 걸러낸 청정함으로 두손을 모은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행복하기를’ 법정스님의 말씀이 저절로 내 것이 되어 온몸과 마음으로 기도드린다.

<김자원/ 뉴욕불교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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