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자 없는 교회와 사제

2020-04-10 (금) 조민현/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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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15일 난생처음으로 주일미사가 멈추더니 곧 평일미사도 못하게 하고 저녁 8시에서 아침 5시까지 돌아다니지 말라는 통금이 생겼다. 그러더니 모든 비즈니스가 문을 닫고 주문 배달, 픽업만 되는 Blue Laws 인가 뭔가 발동을 하더니 3월21일 토요일 밤부터는 아무도 집밖을 나가지 말라고 주지사가 긴급사태를 선포해버린다.

한국에서는 박해시절 대원군도 막지 못한 천주교 미사가 236년만에 처음으로 한국 천주교 자발적으로 멈춰섰다고 한다. 1853년에 세워진 내가 속한 뉴왁교구도 이제 모든 미사가 멈췄다. 이태리 로마의 미사도 멈춰 섰다니 할 말은 다한 것이다. 10인이하의 미사만 수도원에서 이루어진다 하니 우리보다 낫다.

우리는 사순절 금요일에 하는 십자가의 기도도, 판공 고백성사도, 평일미사도 주일미사도 오늘 3월22일에 가족들이 오래 준비하고 대부 대모들이 멀리서 왔다는 세례식도 취소되는 개점폐업 상태에 들어갔다. 주일인데 이렇게 멍하니 사무실에 앉았다 성당 한바퀴 돌고 덩그러니 감실앞에 앉아있다가 다시 사제관으로 돌아오니 맨붕 상태가 오는 것 같다.


사제생활 21년만에 이런 일은 처음 겪어본다. 거리에 사람이 없다. 타로를 데리고 나갔다가 경찰에게 집밖에 나왔다고 티켓 받는게 아닌지 겁이 약간 났다.

길거리에는 봄이라 꽃봉오리가 피어나고 푸릇푸릇 잎새가 돋는데 정작 보고 기뻐해주어야 할 사람들이 없다.

성당이 터어엉 비었다. 성체성사가 멈춰섰다. 성체성사란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주님의 테이블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것인데 테이블도 준비 됐고 집전하는 사제도 준비되었고 빵도 포도주도 다 내어 놨는데 사람들이 없다. 그냥 주님의 제대가 터어엉 비웠고 빵과 포도주도 나눠줄 사람이 없다. 그냥 신자들이 없다.

매주일 우리 교회 7대의 미사에 신자들이 1,000명 가까이 오셔서 문앞에서 인사하고 악수하고 웃음 짓고 손 흔들고 포옹하고 미사 올리는 게 내 일이었는데 이제 그냥 멍하니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나도 내가 뭐 하는지 잘 모르겠다.

신자 여러분들이 갑자기 고맙고 보고 싶고 그립다. 가까이 있을 때 모른다더니 우리 사제들이 얼마나 복에 겨웠는지 그때는 몰랐던 것 같다. 신자 없는 교회와 사제는 ‘앙코’ 없는 찐빵과 같다.

<조민현/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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