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포의 시간들

2020-04-09 (목) 서천/ 마하선원 주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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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종교 단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저희 사찰도 한 달 째 법회나 집회를 못하고 있다. 그간 한인 가정에는 별일 없으시며 여러분 모두 건강은 어떠하신지.

어제는 오랜 지인과 안부를 하면서 가족 중 한 명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이야기를 듣다보니 문득 두려운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사는 롱아일랜드에도 하루에 몇 명이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실로 많은 것을 돌아보는 시간들 속에 부처님의 자비를 생각하고 여러분들에 건안을 생각한다. 질병 하나로 흔들리는 지구, 공포에 휩싸인 인류, 그리고 무너지는 사회 연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감염자와 사망자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절감한다.


이런 시대적 상황이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도 여러분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불과 한 두 달 만에 확신이 불확실해졌으며 강했던 힘들이 연약함으로 변하여 정치나 권력도 힘을 잃고 서로 협조 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세게 78억 인구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미미한 바이러스는, 서방 강국들의 힘으로도 막아 내지 못했던 내전들을 중지 시키고 군대도 막지 못한 시위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고 함께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그동안 교만했던 행위에 대해 자숙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위성에서 바라본 지구는 한층 더 깨끗해졌고 밖을 향하여 그렇게 분주하던 사람들이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하여 더 많이 이해하기 시작하였을 것이며 아이들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며 세상에서 무엇이 소중한 지를 깨닫게 하는 시간도 되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서로 정을 나누며 대화 할 수 있고 함께 식사를 하며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밖으로만 향했던 생각들이 내면세계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만들었으니 더욱 성숙해 질 것이며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각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으리만큼 어려운 이런 시간은 또한 우리 모두에게 반성의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이든 사람들은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자극이라 여기고 젊은이들은 이 고통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 할 것이며, 교만을 벗고 겸허라는 옷을 입게 될 것이다.

피해 갈 수 없는 것, 지금이 그런 때인 것 같다. 인간은 그저 먼지 하나에 불과 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며 바이러스의 불가항력 앞에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우리의 가치는 무엇이며 존재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내면세계의 통찰이, 정신세계를 한층 더 끌어 올려 개인이 아닌 전체를 살펴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져다 줄 것이며 인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리라는 희망적인 기대를 해본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제자들이 물었다. 당신이 세상에 안계시면 우리는 누구를 의지해서 살아야 합니까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라(自燈明 法燈明)”이라는 최후의 말씀을 하셨다. 결코 부처님을 의지 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은 이유는 ”그대가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모두 힘든 시기를 안정적으로 대처 해 나가기 위해서 평정심을 잃지 말고 자신을 등불로 삼아 지혜를 쓰며자연의 질서를 굳게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봄이 왔어도, 사방에 개나리 만발하여도 얼어붙은 한 겨울과 같으니 뒤뜰 그득한 개나리라도 한 다발 꺽어다 불전에 올려 놓아야겠다. “여러분 힘내세요! ”

<서천/ 마하선원 주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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