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중물

2020-04-08 (수) 이상민/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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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땐 물이 귀했다. 그래서 수도가 없는 지역엔 지하수를 퍼내는 우물이나 펌프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펌프 위에는 작은 바가지에 물이 담겨져 있는데 이 물을 마중물이라 부른다. 펌프 위에다 이 물을 붓고 펌프질을 해야 지하수를 콸콸 퍼올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용도를 모르는 사람이 마중물을 홀딱 마셔버리는 바람에 지하수를 더 이상 퍼올리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봤다. 무지로 인해 뒷사람은 그만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게 된다.

전례없는 대유행병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건강이 제일 문제지만 그다음은 맥없이 쓰러져가는 경제다. 실업자는 늘어가고 소상인은 손을 들기 시작했다. 참으로 암울한 기운이 언제 종식될지 모르고 계속된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살리려고 이런저런 구제금과 융자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필자는 회계사로서 요즘 사명감을 갖고 어떻게 한인사회의 경제를 살리는데 도움이 될까 열심히 상담하며 일하고 있다. 발표되는 구제 및 융자 프로그램의 조건과 시행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매일 공부를 해도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나라에서 마치 공짜 돈을 퍼준다는 소문이 난 모양이다.


지금 정부에선 쓰러져가는 경제를 살리고자 경기부양책을 내고 있는 것이다. 불쌍한 이들에게 구호금을 내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다. EIDL, PPP LOAN 등은 말 그대로 이자를 받는 융자 프로그램이다. 용도에 맞춰 먼저 바르게 사용하고 그에 대해 면제 신청을 한 후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승인됐을 때만 면제가 가능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데 마치 이 부분이 정부 돈을 빌리고 떼먹어도 된다는 해석들을 한 것 같다.

남의 돈을 빌리면 갚는 것이 당연하다. 돈을 떼먹어도 될 것 같으니까 일단 빌리고 보자는 태도는 자신만 살고 사회를 망치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다. 지금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다. 정부의 도움을 받아 죽기 살기 일해서 사업을 예전 수준으로 올려 자신의 비즈니스를 살리고 그래서 종업원도 살리고 도움 받은 융자까지 상환해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업을 하는 기업가의 정신이다. 이들이 성공해야만 사회와 나라가 바르게 돌아갈 수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주는 혜택은 펌프 위에 놓인 마중물과 같다. 소량의 마중물이 들어가 지하수를 콸콸 퍼올리듯 우리는 정부의 융자를 바르게 사용해서 다시 말해 열심히 펌프질을 해서 경제 살리기에 일조를 해야 된다. 그리고, 뒤에 올 사람을 위해 마중물을 채우듯 융자를 상환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이상민/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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