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자의 신비

2020-04-03 (금) 김창만/ 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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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白磁)는 신비하다. 물을 담아놓으면 자연적으로 정수된다. 음식을 담아 놓으면 오래 동안 선도를 유지한다. 백자는 열전도율이 빨라서 음식 조리에 편리하다. 백자는 불순물을 침전시켜주고 결코 닳거나 낡지 않는다. 백자는 다이아몬드로 상처를 냈을 때만 긁히는 정도로 강도가 견고하다. 백자와 옻칠의 수명은 보통 천 년 이상이다.

백자는 수많은 미세기공이 형성되어 있어 내공이 숨을 쉰다. 여름과 겨울에 안의 온도가 일정하다. 음식을 담아두어도 장기간 변질하지 않는다. 이순신이 일본과의 해전에서 전승할 때 군량미와 물이 부패하지 않도록 해준 도자기의 힘이 컸다. 7년간의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부른다. (김재광의 ‘도자기 여행’ 중에서)

-백자는 제작 과정이 신비하다. 도공의 지성이 담긴 혼에다 흙과 불, 깊은 계곡의 바위 밑을 흐르는 석천수 그리고 바람, 이 여섯 가지가 기막히게 조화가 되어야 제대로 된 백자를 얻을 수 있다. 여기에 태토, 유약, 건조 괴정에도 도공의 정성이 묻어나야 살아 숨 쉬는 신비한 백자는 태어난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이삼평이 도우진 가마에서 처음 백자를 구웠다. 하지만 고고한 우유 빛 나는 이조 백자를 만들 수 없었다. 백자를 빚는 점토 카올린(Kaolin)이 그들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0년 후에야 아리타에서 카올린을 찾아냈다. 이제 일본은 이조 백자와 흡사한 백자를 만들었다. 그 후 일본은 도자기 부국론을 주창하여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가마 안의 온도가 섭씨 1,350도에 도달하면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자화(磁化)현상이다. 이때 겉에 칠한 유약이 기름처럼 용해되고 흙 안에 있는 불순물이 녹아 밖으로 분출 된다. 이 과정에서 백자의 밀도는 놀랄 만큼 단단해진다. 불꽃의 질이 질 좋은 백자를 만든다.

같은 그릇이라도 거치는 과정에 따라 그릇에 붙는 이름과 운명은 달라진다. 항아리는 3단계 과정을 거쳐 완성되고 사기는 8단계로 마무리 된다. 백자나 청자를 구워내려면 최소 12단계, 70일이 소요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속성 과정에 경도된 사람은 큰 그릇이 되기 힘들고 탁월함과는 거리가 멀다.

<김창만/ 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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