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룡과 바퀴벌레

2020-03-25 (수) 여주영 고문
크게 작게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호황을 누리면서 세계경제가 거품이 꺼진 1920년대 말, 이 해에 접어들어 실물경기가 하락하고 10월 29일 월스트릿의 주가가 대폭락하면서 그 여파로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시작되었다.

1939년까지 역사상 가장 길게 이어진 이 사태는 역대급 규모의 경제침체, 금융시장의 대혼란, 대규모의 실직사태 속출 등으로 당시 서구 사회 체계를 완전히 뒤흔들어 버렸다. 말 그대로 사회전체가 완전 붕괴된 상태로 시장경제에 대한 회의, 사람들의 삶의 질 악화, 인종차별, 노사갈등 등을 일으키면서 대혼란을 가져왔다.

100년 뒤인 지금 평화롭게 살던 지구촌에 느닷없이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가 출현해 인류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 우환에서 시작된 이 바이러스가 한국, 일본, 이탈리아에 이어 급기야 미국은 물론, 유럽, 중동 등 가리지 않고 전세계를 강타, 하루아침에 나라별로 사회적 활동이 중지되고 경제적 활동까지 초토화되고 있다.


각국은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치료 가능한 백신이 없는 상태에다 확산을 막기 위한 통제가 쉽지 않아 어려움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뒤늦게 감염자가 급속한 속도로 늘고 있는 미국의 경우, 뉴욕과 캘리포니아, 워싱턴 등 대도시에 대한 비필수 사업장 100% 재택근무 명령으로 자택격리 및 사회적 거리 두기 등 확산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발목이 묶인 경제상황의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코로나19가 잡히는 시기를 향후 4-8개월,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긴 싸움이 될 것이라는 당국의 전망에 한인업주들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그나마 필수업계에 해당되는 식당 경우 ‘테이크아웃’ ‘무료 배달’ 등의 자구책이라도 만들어 위기를 모면하고자 안간힘을 쓰지만 비필수 업종은 속수무책 상태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연방정부는 이를 타개하고자 특단의 조치로 긴급 경기 부양책을 마련하려고 하지만 이것이 얼마만큼 업주들이 입을 그 많은 피해를 최소화할지는 의문이다.

“확산이 중단되려면 심지어 18개월 걸린다.” 이번 상황이 1929년의 대공황 같은 사태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는 현실에서 그동안 열심히 땀 흘려 일궈온 한인들의 경제는 이제 어떻게 되나? 정부의 즉흥적인 대응, 장기 플랜이 미흡한 상황에서 벌어진 이 엄청난 충격에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에 따르면 지구의 나이는 29억년, 지구상에 식물이 서식한지는 5억-8억년, 인류가 탄생한 시기는 60만-100만 년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장 거대한 몸집의 공룡은 6,500만년전에 멸종, 현재 발자국, 뼈 등만 남겨 놓고 있다. 반면 공룡이 등장하기 1억년전부터 존재했던 나약한 몸집의 바퀴벌레는 지금껏 살아남아 인간과 버젓이 함께 살고 있다. 바퀴벌레의 이런 끈질긴 생존비결은 무엇일까? 몸집이 가볍다보니 변화가 유연하고 민첩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머리가 잘려도 8일간이나 생존하며 냉동실 안에 감금해도 3일간 버텨낼 만큼 강인한 점도 있다.

인간이 이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몸집이 크면 살아남기 힘들고 가벼우면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를 위협하는 코로나19 사태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각자 살아온 경제상황의 결과가 희비로 극명하게 엇갈릴 것이다. 교만과 탐욕으로 욕심스럽게 몸집 늘이기에만 열중했던 사람과 작지만 소박하고 겸손한 자세로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과의 차이다. 공룡같이 탐욕의 교만한 삶이냐? 바퀴벌레처럼 낮은 자세의 소박한 삶이냐?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이다.

<여주영 고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