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호승의 영역시집 두 권

2020-03-18 (수) 최연홍/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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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현역시인 가운데 정호승이 들어있다. 그의 나이 60대 중반에 나온 영역시집은 그의 시편들이 한국 밖에서 얼마나 유통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영역은 그의 시를 세계로 확대하는 첫 번째 수순이다. 문학이 국경을 초월하는 인간의 매체인데 언제부터 시가 한 국경 안에서만 통용되는 문학이 되었다.

소설은 국경을 넘어 읽히는데 시는 그만큼 한 민족의 정서를 떠나지 못한 채 국경 안에 갇혀있었다는 말이다. 한 민족의 정서 뿐 아니라 시의 모호성, 은유가 국경을 넘지 못했다는 말도 된다. 그러나 정호승의 시는 한 민족의 정서나 시의 모호성이나 기교를 넘어서 애송될 수 있는 문학이기 때문에 영역 시에 대한 우리들의 기대는 크다.

정호승의 한글 시집은 10권이 넘는다. 거기서 228편을 선정, 영역한 두 번역가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들은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가장 적합한 시인의 시편을 번역해 세상에 내놓았다. 한국문학이 상당 기간 노벨문학상의 문을 두드렸지만 아직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 문을 두드린 것이 아니라 정치적 좌파 문학의 시인과 작가가 그 문을 두드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노벨문학상이 국경을 넘은 문학작품을 쓴 시인이나 작가에게 가야 한다면 지금까지 한국은 정치적 성향의 시인과 작가를 추천해왔다.
문학은 좌우의 정치적 색깔을 넘어서야 한다. 문학은 어느 한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1987년부터 정착했다고 보는데 지금도 1987년 이전에 통용되던 문학작품으로 세계화를 겨냥하기에는 한국인의 기대에도 미치지 못한다.

문학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야 한다. 문학이 인간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정호승의 시편들이 이제야 영역되어 밖으로 유통된다는 사실이 만시지탄이 있지만 환영할만하다. 두 권의 영역시집의 제목은 “부치지 않은 편지” (A Letter not Sent, 110편 수록)와 “꽃이 져도 나는 당신을 잊은 적 없네 (Though Flowers fall, I have never forgotten you, 118편 수록)” 이다. 200여 편의 주옥같은 시편 속에서 정호승의 시 한편을 고르라면 나는 ‘수선화에게’를 들겠다. 정호승을 유명하게 만든 시일뿐만 아니라 가장 정호승 다운 시이기 때문이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의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가장 정호승 시인다운 시 한편, 그러나 정호승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시력 50년을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는 중심사상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 인간의 고독에서 사랑과 화해, 용서를 찾아가고 있는 구도자로 지금도 살고 있다.

그가 2015년 3월 한국문화원에서 초청강연과 자작시 낭송을 했을 때 내가 통역을 맡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날 저녁 거기 모인 미국인들이나 한국인들 모두 그가 선정한 다섯 편의 시에 매료되어 있었다.

여기 소개한 ‘수선화에게’ 를 비롯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이별노래’, ‘바닥에 대하여’, ‘산산조각’  이었다. 이제 그의 영역시집이 우리들의 이웃에게 전해지고 미국의 주류사회에 한국시를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기 바란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계 문학인들이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최연홍/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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