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호스피스 환자와의 추억

2020-03-17 (화)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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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나는 호스피스 병동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기초과목만 이수한 간호대 1학년생이 할 수 있는 건 그곳에 있는 환자들의 잡다한 심부름이나 휠체어 밀기 정도였다.

어느 날 가족이 없는 환자분의 말벗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호스피스는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이 확실한 말기 암환자들에게 삶을 편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적극적인 암치료보다는 통증 완화와 무의미한 삶의 연장보다는 남아있는 삶의 질에 목표를 두는 곳이다.

하지만, 호스피스 병동에 있다는 것은 내 삶의 시간이 이제 곧 끝난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그래서 초기엔 그 병동에 오는 것 자체를 못 받아들이거나 그곳 있다는 것에 화가 난 환자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말벗이 되기 위해 찾아간 환자는 평온해 보였다.


그분은 그곳에 있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젊은 날 ‘남묘호랭교'라는 이단종교에 빠져서 남편도 애들도 버리고 집을 떠났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온몸에 암세포로 시한부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제야 남편과 아이들에게 연락했지만 이번엔 가족들이 외면했다. 친정부모도 언니도 어느 누구도 그분과 연락되기를 꺼려했다. 그래서 외롭게 암 투병하던 중 호스피스를 추천받았고 이곳 병동에서 그나마 다른 환자들과 교제하면서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럽다고 했다.

당시 난 간호대학에 보낸 부모님을 원망하고 내 삶을 내 맘대로 할 수 없음을 분노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그분은 이야기했다. “그래도 부모님이 계실 때 잘해 드려. 지금이 소중한거야,”
그분의 딸과 비슷한 나이의 나에게 그분은 담담히 매일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말씀하셨다. 덕분에 나는 맘대로 할 수 없는 내 삶이 그나마 평범한 것을 감사했고, 그래도 대학을 보내주신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고마움으로 바꿨다.
그분을 만난 건 12월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3월 봄이 왔다. 수업을 마치고 호스피스 병동에 들렸다.

“나리야, 오늘 아침에 하늘나라 가셨어.”
“아... 편안하게 가셨죠?”
“응.”
“가족들은요? 마지막 모습 봬도 될까요?”

호스피스 병동에 환자분이 돌아가시면 계시는 방이 있다. 그곳에 그분은 하얀 병원 담요를 덮고 계셨다. 그리고 늘 그렇듯 혼자 계셨다. 간호사가 환자 얼굴을 보여줬다. 웃고 계셨다. 언젠간 보고 싶던 가족을 하늘나라에서 먼 훗날 꼭 만나시길 기도했다.

“참. 가족들이 올 것 같아. 언니랑 전 남편분이 연락이 돼서 온다고 했다네.”
자기가 얼마나 미안했는지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던 그분의 마음이 가족들에게 전해졌으면 했다.

한국의 신천지 사태를 보니 갑자기 25년 전 내 삶에 들어왔던 인연, 삶의 시선을 과거와 현재의 고통이 아닌 내가 아직 가진 것들에게 두라고 했던 그분이 생각났다. 마음을 힘들게 하는 코로나 소식 대신 내 시선을 내가 가진 평범한 것들을 찾아서 둔다.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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