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슈샤인 보이

2020-03-06 (금) 고명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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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교회의 유리 벽에 햇살이 말갛게 부서진다. 봄볕이 달려들다 서성이던 뜰에는 파란 싹들이 고개 내밀다 말고 수줍게 웅크리고 있다. 반가운 마음이 앞서 간 자리마다 웃음꽃이 만발하는 친교실에도 어느새 알록달록 봄물이 들었다. 영의 양식을 배불리 먹은 후에는 육의 양식도 빼놓을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다. 교회에서 먹는 점심은 섬기고 나누며 마음을 채우는 보약이다. 봉사당번이 돌아 오면 새벽부터 서둘러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해놓고 예배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밀물처럼 몰려오는 교우들에게 정성껏 배식하고 나면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지만 수고로움 뒤에는 기쁨과 위로가 선물처럼 찾아 온다.

우리 교회에는 여러 봉사 부서가 있다. 구석구석의 숨은 손길들이 어두운 곳에 촛불을 밝히듯이 제 몸을 태우고 있다. 그 많은 부서 중에 다른 교회에서는 시도하지 않는 특별한 부서가 있는데 ‘슈샤인 팀’이라는 섬김의 부서다. 3년 전쯤 4/14윈도우(4세에서 14세까지 세계 18억5,000명의 어린이들을 품은 선교비전) 세계지도자대회를 개최하며 교회를 찾아오는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뜻있는 섬김을 고민하시던 담임목사님의 번뜩이는 지혜가 많은 지체들의 헌신적인 실행으로 이루어졌다. 임금님의 자리처럼 높고 안락한 의자에는 누구나 앉을 수 있다 섬김의 실천도 글로벌하여 그동안 여러 나라의 교계 지도자들이 그 자리를 덥혀놓고 가셨다. 그들이 남기고 간 감탄과 박수를 간직한 채 지금은 교회 방문자나 모든 교인이 이용할 수 있다.

오래 전에 사라진 슈샤인 보이는 구두닦이의 애칭으로 불렸다. 빡빡머리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거리로 나선 소년들에게 구두닦이 통은 재산목록 1호 같았다. 청소년 보호단체가 직접 청소년들에게 흔하게 줬던 선물이 구두닦이 통과 운동화였다고 하니 지금 우리는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다시금 뒤돌아 보게 된다. 또 슈샤인 보이 직업학교도 있었다고 하니 전쟁 통에 구두 닦는 통을 메고 식구들을 먹여 살리던 땀과 눈물이 가득 밴 구두닦이 통은 고단했던 시대를 상기시켜주는 상징적인 유물인 셈이다. 그 시절의 슈샤인 보이는 이제 노년을 맞았고 경제적인 여유도 있게 되었다. 이러한 때에 교회 안에 구두를 닦는 작은 섬김은 많은 공동체를 향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불어 상대방보다 낮아지기를 멀리하는 세상에 아름다운 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 어렵던 시절의 구두닦이는 자취를 감췄다 해도 지금의 지구촌 곳곳에는 한 끼를 얻기 위해 길바닥에 주저 앉아 눈물을 닦는 이가 많다. 마음의 평안함이 달아나고 육신의 고통이 찾아오니 눈물 닦아낼 겨를도 없을 것이다. 파도와 같은 고난과 절망 속에서 히스기야처럼 벽을 향한 기도의 눈물을 닦으며, 얼룩지고 상처 난 손을 모으는 소망의 고백이 있다. 더럽혀진 손을 씻겨 주고 연약한 마음을 보듬어 주듯 오늘도 먼지와 때 묻은 구두를 닦기 위해서 남들보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친교실 복도에 마련된 구두닦이 부스로 향한다 섬김의 발걸음이라 기분이 절로 상쾌해지고 뿌듯하기만 하다. “고단함에 지친 낡은 구두, 홍해를 건너온 젖은 구두, 정의에 맞서다 비뚤어진 굽도 고쳐 드립니다.” 비록 주어진 시간 동안 찌든 세상사에 때 묻은 구두를 닦지만, 세계 향한 복음의 지경을 넓혀 가듯이 또 하나의 새로운 사랑의 터전을 다져가고 있는 셈이다.

햇살 다소곳이 찾아드는 계단 아래서 섬김을 받고 따끈한 커피로 고마움을 대신하니 또 하나의 섬김이 반짝이는 구두 위에서 빛난다

<고명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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