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소원이 말이라면 거지도 탈 텐데. (If wishes were horses, beggars would ride them.)란 속담이 있다. 또 영어에 ‘환상의 나래를 타고 (in a flight of fancy)’ 란 표현도 있듯이 그 누가 백마가 아닌 흑마를 타고 세계의 모든 약소 국가 민족의 인권 챔피언으로 착취당하고 억압 받는 사람들의 투사가 되어줄 수 있을까.
로마제국에 반란을 일으킨 검투사 출신 스파르타쿠스 같이, 멕시코의 농지 개혁가 에밀리아노 자파타 같이, 아르헨티나 출생의 쿠바 혁명가 에르네스토 게바라 같이, 그리고 1960년대 흑백 인종의 통합이 아닌 흑인의 분리주의를 주창하며 흑인의 자존자립을 위해서는 자기방어 자위책으로 정당방위의 폭력도 불사하자고 흑인의 자존 자긍심을 고무 선양한 인권 투사 말콤 X(그의 본래의 성 씨 Little이 다른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백인들의 노예 시절 백인들이 지어준 것이라며 버리고 “X”로 개명했음) 같이.
그럴 경우 그가 할 일은 무엇보다 먼저 지배계급이 독선독단적으로 저희들만을 위해 설정해놓고 강압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집행하고 있는 갖가지 부당한 법률과 규칙과 관습에 도전하는 일일 것이다.
양심(良心)과 상식보다 힘, 수단보다 목적, 진실보다 거짓, 다수보다 소수, 빈자보다 부자, 약자보다 강자, 여자보다 남자, 자유주의나 진보주의보다 보수주의와 복고주의를 옹호하는 법규와 관습에. 그래서 그동안 소수 특권층만이 즐기던 ‘살 만한 삶’을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 이럴 경우, 다시 말해 그 누가 성공했을 경우, 세상이 뒤집혔다고 열광한 나머지 복수심을 불러 일으켜서는 도로아미타불이리라.
그렇게 되면 ‘’하늘에 계신 우리 하늘님 아버지” 하는 대신 “땅 속에 계신 우리 땅님 어머니” 부르면서 남성 백인 지배체제에서 여성 유색인 지배체제로 바뀌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이럴 때 우리가 조심하고 피해야 할 함정이 흑백논리와 자타의 이분법이다.
마치 세상 한 쪽에는 선인만 있고 또 한 쪽에는 악인만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형편과 상황에 따라 모든 비백색 유색인, 비선민인 이방인, 비기독교신자인 모든 미신자 이교도, 그러다간 너와 나,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오로지 나 혼자만 옳다는 유아독선(唯我獨善)의 유아독존(唯我獨尊)이 되고 말 테니까.
이와 같은 유아독선적 유아독존의 가치관이 유사 이래 인류역사를 통해 온갖 잔악무도하고 파렴치한 천하만행을 여호와 하나님, 기독교, 민주주의, 자유세계 (그 누구만을 위한?), 또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노동자, 농민, 인민, 아니면 어떤 왕실이나 왕족, 양반이나 귀족, 어떤 제국, 제왕, 천황폐하, 위대한 그 누구나 그 무엇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미화시켜 오지 않았나. 십자군을 비롯해 사람사냥 아니면 황금사냥에 나선 서양의 해적들이 반항하는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은 대량 살상 거의 멸종시키고, 복종하는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들은 노예로 삼아 백인들의 식민지와 제국을 건설해 오지 않았는가.
이와 같은 가치관이 최근에는 한국의 분단, 캄보디아의 초토화, 칠레와 니카라과의 붕괴작전, 아프가니스탄, 포크랜드 섬, 그라나다, 파나마, 이락, 리비아, 등의 침공과 시리아 사태를 정당화하고 합리화 해오고 있다.
한편 이렇게 전횡적인 가치관이 잘못된 것이라고 믿고 반대하는 반항의 정신을 가진 이상(理想 아니 異常)주의자 반골(反骨/叛骨)들은 언제 어디서나 ‘역적,’ ‘반도,‘이단자,’ ‘광인,’ ‘악인,’ ‘죄인,’ ‘깜둥이,’ ‘노랭이,’ ‘파랭이,’로 몰려 박해 받고 희생된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폭군을 몰아내기 전에 우리 각자 가슴과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폭군부터 몰아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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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