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이름, 영어이름

2020-03-03 (화) 정미현/머시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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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에서든, 선생님들은 첫 수업에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다. 내 경우는 수업 첫날 칠판에 커다랗게 나의 성과 이름을 적어놓고, 수업을 받는 학생들에게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 지 알려 준다. 이 때 나는 내 이름을 세 가지 언어로 적는다. 

미국식, 즉 영어로 먼저 적고,  다음에는 한글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자로 적는다. 다 같은 이름이지만, 영어식으로 적힌 내 이름은 이름이 먼저고, 성이 나중이다. 한글로 적힌 내 이름은 성이 먼저고 이름이 나중이다. 여기까지 적어 놓고 설명을 시작한다. 우선,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점을 얘기한다. 한국은 물리적으로든 추상적이든, 큰 집합이나 큰 개념을 우선적으로 적는 경향이 있다. 즉, 성은 내가 속한 집단을 대표하므로 먼저 적는 것일 수 있다. 쉬운 예로 편지 봉투 쓰기를 보자. 한국에서는 도, 시나 마을, 그리고 개별주소 순으로 적는다. 미국에서는 개별주소, 시나 마을 이름, 그리고 주를 적게된다.  

다음으로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한글이 영어처럼 낱자가 소리를 표현하는 알파벳이라는 것이다. 이 때 많은 학생들은 “아니 저 복잡하게 생긴글자가 알파벳의 모임이라고?” 이런 표정들이다.  학생들은 이 때 한글에 진심으로 흥미를 갖게 되는데, 이는 전공이 문어교육 (읽기 쓰기 교육)인 학교 선생님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내 이름 소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자로 내 이름을 휙휙 써내려 가면, 학생들은 그 복잡해 보이는 글자에 호기심을 보이고, 이름을 적는 방법에 다시 한번 놀란다. 한자는 이름의 뜻을 나타내는 역할을 해준다고 설명하고, 한자 이름에 얽힌 약간의 역사 문화 이야기를 더 해주면, 아주 재미있어 하곤 한다. 또한 같은 항렬들이 주로 쓰는 ‘돌림자’에 대해서 또 이제는 한자없이 순수 한글 이름도 많다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이름 얘기들을 가정에서 자녀들과 함께 하는 것은 어떨까? 작은 대화(small talk)가  큰 것들을 이룰 수 있다. 첫째, 문화적 차이에 대한 존중심을 길러준다.  어느 한 가지 문화와 언어 방식만이 옳은 것이 아니며, 이는 때와 장소에 따라 필요에 따라 생기고, 발전하고, 또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언어 혹은 읽기 쓰기는 내가 속한 집단의 문화와 사고체계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한다. 예를 들면, 한국의 글쓰기는 대체로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큰 개념으로 시작해서 이를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에 이용하는 형태를 취한다. 반대로 미국의 글쓰기는 내 생각을 먼저 확립하고, 이를 더 뚜렷하게 밝히기 위해서 다른 생각과 개념들을 이용한다. 성과 이름, 편지봉투 쓰기처럼 간단한 예가 복잡한 논문 쓰기 방식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셋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민 가정의 자녀들은 언젠가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이름은 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가장 쉬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내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내 한국 이름을 좋아하는가, 미국이름이 따로 있는가, 작은 생각들이 언젠가는 큰 나 자신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미현/머시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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