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삼일절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

2020-02-28 (금) 김광석/ 한미헤리티지소사이어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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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흘리개 시절, 삼일절이면 회당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흰 두루마기 입은 어르신이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로 시작되는 기미독립선언문을 엄숙하게 낭독하시면, 뜻도 모르고 그저 서있다가, 만세삼창 하면, 옆에 분들 따라서 팔을 번쩍 들고 만세를 소리치던 기억. 옆에 있던 박(朴)씨 성( )을 가진 친구의 아버님의 함자가 ‘만새’였는데, “박만세’하며 친구를 골려주던 죄송한 기억도 새롭다.

70대 중 후반 분들의 경우, 교육과정에서 기미독립선언문을 반드시 외어야 했지만, 그 후 세대들에게는 국민교육헌장이 암송되고, 기미독립선언문은 암송보다는 교육 되는 수준으로 조정되며, 시간이 지나며, 삼일운동의 정신과 내역 보다는 독립운동이라는 큰 테두리로 이해되는 것같다.

젊은시절에는, 독립선언문의 내용과 표현에 대하여 나약함을 탓하기도 했다. 일제의 잘못된 내용들을 적나라하게 들춰내고, 이를 타도하기 위해 모든 국민이 합쳐야 하고, 국외적으로는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모든 국가들이 실천하여 조선의 독립을 도와야 한다는 당위성을 촉구하는 격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며, 선언문을 쓰신 분들의 사상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크게 두가지로 마음에 담는다.

첫째는, 자아성찰적인 독립관과 시대적 양심의 세계관이다. 조선의 독립은 조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평등의 대의라는 것. 일제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서도, 나의 소임이 자기 건설에 있고, 타의 파괴에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정의와 시대 양심으로 인류의 역사를 써가야 한다는 것. 이러한 양심에 일본도 자숙하고 인류는 평화의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역사성이다. 선언문을 8표하는 날짜를 조선건국 4,252년 3월이라고 언급했는데, 우리 민족은 이러한 사상을 4,200년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서양사는 기원전 1,700년전의 함무라비 법전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토대 위에 정복의 역사로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헬레니즘이나 로마의 패권주의에서는 인류를 말하지 않는다. 신항로 개척 후 등장하는 제국주의들도 인류를 말하지 못했다. 일제에 억압을 당하고 피폐한 상황에서도 일제를 탓하지 아니하며 나의 소임은 자기건설에 있고 정의와 인류평등을 말하는 그 민족이 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에 대하여, 그것이 우리 민족이라는 것에 대하여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이러한 언급에 대하여 혹자는 힘없는 자의 환상적 자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은 무력에 있기보다는 정신에 있다고 본다. 무력은 객관적이고 상대적이지만, 정신인 주관적이기 때문이며, 무력은 시간에 제한되지만 정신은 시공에 제한을 받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힘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어떠한 힘일까.
현재 나의 소임은 나에게 충실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나의 생활이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러한 노력을 경주함으로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세계만방에 고하여 인류 평등의 대의를 극명한다”는 그 정신적인 힘이다. 이는 분명 인류를 구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 우리 민족의 바른 역사와 얼을 우리 스스로 다시 찾고 이를 우리의 후손들에게 나누기 위해, 지난해 삼일절 100주년이 되는 날, 삼일정신에 감사하며, 뜻을 함께하는 분들과 함께 뉴욕 주정부에 한미헤리티지협회의 이름을 신청하였다. 그 후 비영리 조직으로서 연방정부 및 모든 공적 절차를 마치고, 본국의 민족사학자들과 함께 바른 역사와 얼을 문서화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삼일절이 준 큰 선물이며 사명이었다.

<김광석/ 한미헤리티지소사이어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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