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용서와 안 용서

2020-02-18 (화)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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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속인 사람들, 나를 괴롭힌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잘못했다고 사과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다 용서해주었다. 어떤 때는 과거에 생겼던 일들이 뜬금없이 떠오른다. 나를 모함해서 나를 곤경에 빠뜨리게 한 사람도 생각이 난다. 이런 과거의 슬프고 괴로운 일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조이어오고, 배가 아프고, 분노를 느낀다. 이럴 때, 어떻게 이런 나쁜 놈들을 복수해줄 수 있을까 하고, 복수할 생각을 해본다.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가슴이 뛰고, 흥분해지고, 심장이 빨리 뛰고, 마음은 오히려 더 불안해진다.

복수를 하고 싶어도, 복수를 해줄 만큼 힘도 없고, 설령 복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복수하고 난 후, 보복당할 우려 때문에 복수를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제일 편한 방법은 모든 것을 그냥 용서해주는 것이다. 무조건, 이유도 없이, 용서해주는 것이다. 아마 내가 전생에 그 사람들에게 뭔가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 세상에서 그 보복을 당하고 있는 모양이라면서, 오히려 나의 잘못을 나무란다. 그리고 용서를 해준다. 용서해주고 나면 가슴이 확 풀린다.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진다. 그래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에게 상담해오면, 무조건 다 용서해주라고 권한다.


그런데 남들을 용서해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트럼프가 바로 그런 사람인 것 같다.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는 하원의회에서 트럼프를 탄핵했다. 두 사람 사이는 나쁘다.
지난 4일(2020/2)에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신년 국정연설에서 벌어진 일이다. 시작할 무렵, 트럼프가 국정연설문을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에게 주었다. 펠로시는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트럼프는 악수를 거절했다. 트럼프는 아량이 없는, 속이 좁은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엿볼 수가 있었다. 의장 펠로시도 홧김에, 사람들 보는 앞에서, 트럼프의 연설문을 찢어버린다. 펠로시도 또한 속 좁은 정치인처럼 보였다.

국정연설이 끝난 다음 날 상원에서는 트럼프를 탄핵심판에서 무죄라고 결정했다. 트럼프는 승리에 불탔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자기를 탄핵시킨 야당의원들을 싸잡아 나쁜 놈들이라고 욕질을 했다. 이삼일 후에는. 하원 탄핵청문회에서 트럼프에게 불리하게 증언을 했었던 사람들을 해고했다.

트럼프는 자기의 적들을 용서해줄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트럼프는 계속 적들을 비난하면서 적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아가야 할 사람이 되고 말았다.

만약 트럼프가 비난하지 않고 그리고 보복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아, 트럼프는 사람이 좋아서, 욕해도 괜찮아, 욕해도 금방 우리들을 용서해줄 그런 아량이 넓은 사람이야.” 그러고는 트럼프를 얕잡아볼 것이다. 기회만 있으면 트럼프를 물어뜯고 죽이려고 달라 들 것이다. 트럼프는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또 재선되기 위해서 그는 적들을 강하게 비난하고 보복해야만 할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강하게 떠들어대기에, 오히려 트럼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금년 선거에서 재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트럼프는 적들을 용서해주지 못하고, 많은 적들을 만들어가면서 살아가고 있기에, 앞으로의 그의 삶은 점점 더 고되어 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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