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밸런타인의 날

2020-02-10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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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밸런타인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성경을 읽다가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 지니라.”(전도서9:10)하는 말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하고 생각하다가 돈도 없고 별 재주도 없는 그는 편지쓰기를 시작하였다. 병든 사람, 외로운 사람, 가난한 사람 등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는 우편제도가 없는 시대였으므로 자신이 직접 배달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밸런타인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큰 위로를 받았고 건강도 회복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성자로 모셨다. 그의 생일이 기원 270년 2월14일이었으므로 서구사회는 이 날을 ‘성 밸런타인의 날’(St. Valentine’s Day)로 정하여 사랑의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생겼다. 이 날 주는 연애편지는 꼭 이루어진다고 하여 사랑의 편지를 쓰는 날이기도 하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내는 것일까? 의심을 보류하고 신뢰하는 것이 사랑이다. 저주를 보류하고 축복하는 것이 사랑이다. 공격의 화살을 늦추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다. 비판하기 보다 감사를 먼저 하고, 요구하기 보다 먼저 내어주는 것이 사랑이다. 섭섭한 생각보다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며, 남에게 시키려고만 하지 말고 내가 뛰어드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내 잔을 비워 남의 잔을 채워주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종교가 강조한다. 기독교는 물론이고, 불교의 자비도 결국 사랑이다. 한국 현대문학의 시조라고 하는 이광수의 소설 ‘사랑’도 사랑의 현대적인 의미를 소설가의 입장에서 탐구한 것이다. 이광수 뿐이겠는가. 거의 모든 소설이 사랑과 사랑의 관계를 규명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아름다운 예배이다. 이웃을 향한 그대의 미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송이요, 말도 없이 빛도 없이 실천하는 그대의 친절은 어두운 세상을 향한 둘도 없는 설교이다. 사랑은 지루할 만큼 오래 참는 것이고, 경쟁적으로나 자랑 삼아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한없는 겸손이고 이익을 넘어선 행동이다.

사랑은 쉽게 화내지 않고 미움을 품은 채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 사랑이란 너그럽게 덮어줄 줄 알고 남을 믿어주고, 언제나 희망으로 긍정적으로 대하며 풍파를 만나도 잘 견디는 인내가 사랑이다. 약으로 고칠 수 없는 병들, 예컨대 고독, 슬픔, 좌절 등을 치료할 수 있는 묘약이 사랑이다.

아침이슬에 젖은 장미가 무척 아름답다. 눈물에 젖은 사랑이 너무나 고귀하다. 가장 쓸쓸한 장소는 사랑이 빠진 마음 구석이다. 뜨거운 사랑으로 하루를 사는 것이 무미건조(無味乾燥)하게 백날을 사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 성경은 예수의 생애를 “그는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복음13:11)고 한 마디로 요약하였다. 십자가를 지기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사랑을 말한 것이다.

쥐의 실험에서 같은 양의 젖을 먹여도 어미의 품에서 떼어 놓고 키운 쥐보다 어미가 키운 쥐의 성장호르몬이 높아 더 건강한 쥐로 자라났다고 한다. 이 실험은 사랑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것이다.

사랑은 서로를 하나로 묶는 신비한 띠이며 피차의 수치(羞恭)를 가려주는 옷이다. 사랑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묘약, 의욕을 일으키는 음악, 천국의 시작, 나란히 걷는 즐거운 여행이다. 사랑은 아픔이다. 그러나 이 아픔은 엄청난 기쁨이 약속되는 아픔이다. 아픔 없는 사랑을 꿈꾼다면 그것은 망상(?惻)이다.

십자가는 최고의 아픔이지만 그 건너편에 천국이 있다. 사랑하라. 사랑하는 자가 가장 아름답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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