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개네들의 천국

2020-02-07 (금)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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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애완동물의 천국이다. 대다수의 미국 가정에서 개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기르고 있으며 이들 애완동물에 쏟는 미국인들의 사랑과 정성은 각별하다.

특히 개를 많이 기르고 있는데 기른다고 하기 보다는 개와 함께 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왜냐 하면 사람과 개가 같은 생활공간에서 함께 지내기 때문이다. 한 지붕 밑에서 밥도 같이 먹고 TV도 같이 보며 때로는 잠도 같이 잔다. 이들에겐 개가 ‘가축’이 아니라 ‘가족’의 일원인 것이다.

얼마 전 나보다 20여 년 먼저 미국에 온 P라는 친구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갔는데 저녁 메뉴로 갈비가 나왔다. 나는 먹고 난 갈비뼈를 무심코 그 집에서 기르는 개한테 던져주었다. 개가 좋아라 하고 뼈다귀를 입에 받아 무는 순간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그 집의 젊은 두 아들이 얼굴색이 하얗게 변하더니 개에게 달려들어 한 사람은 개의 입을 벌리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개 목구멍 속에 손가락을 넣어 내가 개에게 던져준 뼈다귀를 꺼집어내는 것이 아닌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친구가 하는 말이 '미국 개는 마켓에서 사온 개 먹이만을 먹고 살기 때문에 쇠뼈다귀처럼 단단한 것은 소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저녁식사 후 그 친구는 스푼으로 개의 입에 무엇인가를 떠먹이고 있었다. 내가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개 보약’이라고 말했다. 며칠 전에는 사진관에 가서 개의 영정사진까지 찍어놓았단다. “보약에 영정 사진이라니. 이거 개 이야기 맞아?”

며칠 전 그 친구 집에 다시 다녀왔다. 이제는 너무 늙어 눈도 안 보이고 걷지도 못할 뿐 아니라 치매 증세까지 보이지만 친구 내외는 여전히 해피를 정성껏 보살피고 있었다.

늙고 병들면 부모도 내다 버린다는 세상인데 애완동물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상실한 늙은 개를 끝까지 돌보고 있는 그 친구를 보니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론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 친구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3남매를 하나같이 훌륭하게 키워내었다. 대형 로펌의 변호사로, 뉴욕 시청 공무원으로, 교육행정가로 올곧게 장성한 3남매는 부모로부터 사랑이라는 값진 교훈을 물려받은 것이다.

해피는 좋은 주인 만나 이름처럼 행복한 개의 일생을 마치려 하고 있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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