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네버 엔딩 러브레터

2020-02-07 (금) 고명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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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주말 아침이지만 평일 보다 서둘러 눈을 떴다. 지난밤 잠들기 전에 찬물에 담기 놓았던 미역을 뽀드득 소리나게 주물러 씻어 놓고 오랜만에 흰쌀만 밥솥에 앉혀 놓았다. 퇴근 후에 집에 돌아와서 바로 상차림을 하기 위해서 몇 가지 미리 준비를 하고 출근할 생각에 마음이 바빠지는 아침이다. 싱싱한 연어를 통째로 밑간을 하여 랩을 씌워 냉장고에 임시 저장을 하고 쇠고기 미역국도 맛있게 끓였다.

생일을 맞이하는 아들이 저녘 시간에 맞춰 집으로 오겠다는 전갈을 받고 흥분하고 있는 속마음을 들킨듯 멋적은 웃음을 흘리며 젖은 손을 닦는다.

몇 년 전 결혼을 하고 타 주로 분가한 아들부부와 서로 번갈아 오가며 가끔씩 만나고 있는데 그 때마다 작은 설레임은 봄비처럼 기다림을 재촉한다. 한글도 다 떼기 전에 부모의 손을 잡고 고국 땅을 떠나서 물 설고 낯 설은 토양에 뿌리 내려 곱게 자라 준 아들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이웃의 자녀들과 비교하다 보면 특별히 잘 난 것 없어 보여 가끔은 남의 떡을 넘보며 속앓이도 했었다.


지내고 보니 모나지 않게 심성이 올곧게 성장한 아들이 효도하는 자식이라는 것을 혼란한 세대를 살아 가며 진정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어엿한 가장으로 행복한 삶을 개척해 가며 사회에서도 제 몫을 잘 감당하고 있으니 더 이상의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생각이 평범한 부모의 진심이라면 너무 작은 소망 일까. 어린 나이 철없던 시절에도 칭얼대는 일 없었고 요구사항이 있어도 부모의 형편을 살펴 가며 스스로 조절할 줄 알았던 이해심 많은 아들을 볼 때면 더 이상 양보 안 해도 될 텐데 하는 아쉬움 또한 드러내지 못한 어미의 사랑 방식이었다. 차려 주는대로 투정 없이 잘 먹고 탈 없이 잘 자라 주었기에 하나 뿐인 아들의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도 모르고 있다. 정해진 과정들을 곧은 길로 잘 통과한 뒤에는 늦지 않은 적당한 나이에 제 짝을 스스로 찾아서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고 부모의 시름을 일찍 덜어 주었으니,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혼자서 제 할 일을 알아서 해 주는 고마운 아들이다.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해 본 적이 없고 최선을 다 하되 후회하지 말자고 토닥이던 어깨를 이제는 까치발을 하고도 너와의 눈맞춤이 어렵구나. 고단함도 함께 나누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읽을 수 있는 무언의 화답을 두툼한 가슴에 안길 때면 짜릿한 전율로 속울음을 삼킨다.

어린 나이라서 또 사랑하기 때문에 하지 못한 말들을 지금부터라도 연애편지를 쓰듯이 하나씩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새끼 갈매기가 비상하다 추락을 해도 그저 묵묵히 지켜 보는 어미 갈매기처럼, 떨어지는 꽃잎도 밟지않고 한동안 바라봐 주는 여유로 있는 그대로를 지켜 봐 줄 것이다. 고난도 더 큰 행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일뿐이고 단점은 하나씩 고쳐 가면서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가라고 전해 주고 싶구나.

이번 생일상에는 봄꽃 같이 화사하게 웃으며 종종걸음으로 품에 안길 며느리가 좋아하는 연어구이를 준비했다. 매운맛과 생선구이를 즐긴다는 며느리의 입맛이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으니 아직도 부족한 사랑을 계속 찾아 가야겠다. 긴긴 동면의 끝 자락 이른 봄에 설레임과 희망으로 세상을 열고 온 빛나던 그 모습으로 봄같이 어서 오너라. 내겐 살아가는 동안 힘차게 응원해 줄 튼튼한 두 손과 가슴에 마르지 않을 사랑 담아 열어 두리니…
가슴을 활짝 펴고 달려와 축복의 촛불을 밝히자.

<고명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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