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숨 쉬듯 짓는 죄

2020-02-06 (목) 이태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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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지만 이보다 더 무섭고 끔찍한, 잘못된 생각의 바이러스가 벌써 몇 천 년째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창궐해오고 있지 않는가.

옛날 초등학교 다닐 때 나는 잠자리를 잠자리채로만 잡지 않고 둘째 손가락으로도 잡을 수가 있었다. 책에서 읽었었는지 선생님한테서 들었었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잠자리는 수도 없이 많은 눈을 갖고 있다 했다.

울타리에 앉아 있는 잠자리를 보면 가만 가만 접근해 근처까지 가서 손가락으로 천천히 처음에는 커다랗게 잠자리 주위로 크게 원을 그리기 시작, 점점 작게 나사모양으로 빙빙 나선상(螺旋狀) 그물을 쳐나갔다. 그러면 그 많은 눈으로 내 손가락 끝을 따라 또한 빙빙 돌아가던 잠자리가 어지럼증을 타서인지 얼이 빠져 날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잡히곤 했다.


또 그 후로 6.25 한국동란을 겪은 뒤 그 어느 누구의 체험담인지 수기를 읽어보니 사람이 총살 당할 때 총알 맞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죽는 수가 있다고 했다. 물론 그렇게 미리 총소리에 놀라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얼마 후 정신이 들어 살아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말에 토끼가 제 방귀소리에 놀란다고 아마 내가 서너 살 때 일이었으리라. 나보다 두 살 위의 누이와 연필 한 자루를 갖고 내 꺼다 네 꺼다 싸우다가 마지막에는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내가 사생결단이라도 하듯 ‘너 죽고 나 죽자’며 누이의 손등을 연필로 찔렀다. 그러자 연필심이 부러지면서 누이의 살 속에 박혀버렸다.

연독이 몸에 퍼져 작은 누나가 죽게 되면 그 당시 일정시대 일본순사(경찰관)가 와서 날 잡아갈 것이라는 겁에 새파랗게 질린 나는 순사가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 나기 무섭게 미리 죽어버리리라. 그렇게 마음 먹고 집에 있던 엽총 총알 만드는 납덩이를 하나 손안에 꼭 쥐고 있었다. 그때 만일 순사인지 아닌지 확인도 안 하고 누가 대문 두드리는 소리만 듣고 그 납덩이를 꿀꺽 삼켰더라면 나의 삶이 아주 일찍 끝나버렸을는지 모를 일이다.

또 그 후로 내 몸에는 몇 군데 흉터가 생겼다. 젊은 날 첫사랑에 실연 당해 동해 바다에 투신자살 시도를 했다가 척추수술을 받고 허리에 남은 큰 수술자리 말고도 바른쪽 손등과 왼쪽 눈 옆에 흉터가 남아 있다.

눈 옆에 난 흉터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한때 예수와 교회에 빠졌을 때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로 사람은 다 ‘죄인’이고 매 순간 생각으로 숨 쉬듯 짓는 ‘죄’를 회개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따라 길을 가면서도 수시로 눈을 감고 기도하며 회개하다가 길가에 있는 전봇대. 전신주를 들이박고 이 전신주에 박혀있던 못에 눈 옆이 찢어져 생긴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이나 동물이나 눈앞에 어른거리는 현상에만 집착, 현혹되다가는 얼마든지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궁지에서 빠져나오기는커녕 그 수렁에 더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 같다.

<이태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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