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옥타브 샤누트

2020-01-31 (금)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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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옥타브 샤누트(Octave Chanute)는 60살이 되었다. 그는 유인 동력비행기술의 개발로 널리 존경받는 항공 엔지니어로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 사누트는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자라면서 유인 비행의 꿈을 품은 무명의 시골 청년 라이트 형제를 돕고 싶었다.
샤누트는 수시로 라이트 형제의 비행 실험장을 방문하여 격려하고 후원했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만든 유인 동력 글라이더 ‘플라이어호’가 첫 비행에 성공할 때까지 무려 수 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라이트 형제를 도왔다. 성공이 가까왔을 때, 샤누트는 조용히 뒤로 물러서서 무명으로 남았다. 모든 업적은 라이트 형제에게 돌아가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진 랜드럼 ‘Eight Keys to Greatness' 중에서

샤누트와 라이트 형제의 실력 차이는 컸다. 라이트 형제는 이제 막 비행에 대한 꿈을 품고 연구를 시작한 무명의 과학자였다. 샤누트는 이미 글라이더 비행체 설계사로 항공 기술자로 세계적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이즈음에 샤누트는 우연히 중요한 문서를 열람했다. 1877년 오토 릴리엔탈이라는 독일 사람이 세계 최초로 유인 글라이더를 발명했으나, 시험 비행을 하다가 추락하여 사망했다는 기록이었다. 샤누트의 가슴은 “이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어 놓아야 겠다”는 소원으로 불타올랐다. 이때부터 샤누트는 라이트 형제의 멘토가 되었다. 자신이 쌓아올린 독보적인 지식, 기술, 경험을 그대로 라이트 형제에게 승계하여 주었다.


얼마 후 샤누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라이트 형제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낯선 개척의 길에 서있던 두 젊은이에게 자신의 천금 같은 기술, 경험, 지식을 아낌없이 전수해 준 위대한 멘토가 여기 누어있습니다. 모범적인 멘토로서 사누트가 남긴 아름다운 유산은 인류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이순신이 왜 한국 사람뿐 아니라 일본 사람에게까지 영웅인가. 22번 승리한 해전의 역사 때문인가. 아니다. 전쟁 승리의 노하우가 세밀하게 적혀있는 ‘난중일기’ 때문이다. 판소리도 살아있을 때 후진을 양성함으로 명창의 대를 이어간다. 계승할 사람을 살리지 않으면 역사의 흐름은 그 자리에 멈추고 만다.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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