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곤 회장 사건과 보석금 제도

2020-01-29 (수)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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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만성적자로 다 죽어가던 자동차회사를 흑자로 되살린 실력을 인정받아 구조조정 귀재로 주목받았던 카를로스 곤(Carlos Ghosn) 전 닛산르노 얼라이언스 회장이 대형 음향장비 상자에 몸을 숨겨 일본공항을 통해 레바논으로 도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금융상품거래법 위반 혐의 등으로 일본경찰에 두 번 체포됐다 법원에 보석금 15억엔(약 160억원)을 내고 석방된 상태에서 달아났다.

지금까지의 뉴스를 종합하면 곤 회장은 일본 경비업체의 감시소홀 틈을 타 동경 자택에서 신칸센을 이용, 오사카로 도주하여 전세비행기 편으로 출국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와 레바논, 브라질 국적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그는 합법적 여권으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입국하였다고 레바논 정부는 밝혔다.

보석상태에 있던 곤 회장처럼 이런 도주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보석금을 납부함으로써 징역형을 면하게 된 것이 아니냐고 착각하곤 하는데 보석금은 어디까지나 아직 유죄판결이 나지 않은 형사피고인에게 재판 동안 인신구속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더라도 재판을 계속 받아야 하며 보석금은 정해진 날짜에 법원에 출석하기만 하면 재판의 유무죄 결과에 상관없이 그 돈을 돌려받게 된다. 물론 곤 회장처럼 도망간다면 보석금은 몰수되어 국고로 귀속된다. 판사에 따라서는 보석금 외 부가조건을 달기도 하는데 곤 회장도 동경 거주와 해외출국금지 등이 보석조건으로 달려있었다.

미국의 경우 보석금의 액수를 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판사의 재량에 속한다. 중범의 경우 개별 경제력을 감안하여 수 천 달러에서 수 백만 달러까지 그 진폭이 무척 심한 편이다. 한 예로 ‘미투’ 운동의 진원지가 되었던 영화감독 하비 와인스틴(Harvey Weinstein)은 1급 강간혐의로 구속됐다 풀려나 현재 맨하탄에서 재판 중인데 그의 보석금액은 200만 달러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아무리 와인스틴같은 유명 영화감독이라 하더라도 200만 달러란 거금을 하루 아침에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법인데 이를 대신 지불해주는 보석금 보증보험 회사가 있다는 점이다. 본드맨(bondsman)이라 불리는 이 회사는 피고인이 법원에 출석을 하지 않을 경우 보석금을 대납해주고 그 수수료를 챙겨 영업을 한다.

보석금 제도는 와인스틴 같은 부자들은 부담없이 돈을 맡기고 재판에서 자유롭게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수감되어 불리한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불공정한 제도라는 비판이 많아 뉴욕 일원에서 점차 없어지고 있다.

특히 뉴저지주는 2017년부터 보석금 제도를 아예 없애버렸다. 보석금제 폐지를 앞두고 반대론자들은 이것이 폐지되면 피고인들의 법원 출석률이 낮아지고 범죄혐의자들이 나돌아 다님으로써 그만큼 범죄가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하였지만 법 시행 3년이 지난 지금 피고인들의 출석률이나 범죄율에 별 변화가 없는 반면 오히려 수감자 감소에 따른 행정력이 절감된 것으로 나타나 이 법은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뉴저지의 성공사례를 지켜본 뉴욕주 역시 올 1월 1일부터 보석금 제도를 대폭 줄이는 법을 도입했다. 새 법에 따르면 대부분의 경범죄를 비롯 중범죄 사건이라 하더라도 비폭력성 범죄의 피고인들은 보석금 없이 신병을 풀어주는 것으로 개선됐다. 신법 수혜자가 된 중범죄 전과자, 재범자, 마약범죄 혐의자 등 작년 경우에만 해도 감방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되자 검찰과 일부 지역 정치인 등 반대론자들이 걱정스런 눈초리로 그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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