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잔과 사과

2020-01-27 (월)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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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한 알로 파리를 정복할 것이다.'” 후기인상파의 거장 폴 세잔의 말이다. 친구들은 세계적 화가의 꿈을 품은 세잔에게 파리로 나오라고 종용했다. 세잔은 화려한 도시 파리보다는, 이름 없는 자신의 고향 프로방스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세잔은 평생 한적한 고향에 머무르며 한 가지 그림에 침잠했다. 그 그림은 사과 정물화다. 그림을 그린 40년 동안 하루도 사과 그림을 빠트린 적은 없었다. 세잔 연구로 유명한 D. H. 로렌스는 말했다. '세잔은 40년 동안 분투한 끝에 한 알의 사과성(appleyness)을 아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세잔의 사과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비명을 지르게 한다.'”
-전영백의 ‘현대사상가들의 세잔 읽기’ 중에서

세잔의 위대한 장인정신은 끊임없는 습작의 반복으로 무르익었다. 마음에 드는 사과 그림 하나 얻으려고 무수한 밤을 지새우며 몸부림 쳤다. 그냥 평범한 사과가 아니라, 따뜻하면서 강열한 존재의 힘을 품어내는 특별한 사과를 세잔은 그리고 싶었다. 150번을 시도한 결과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를 얻었다. 그것이 '사과가 있는 정물화‘다. 사과 하나에 전 생애를 건 분투 끝에 세잔은 세상이 모두 놀라는 명작을 남겼다.

세잔이 평소에 가장 싫어했던 것이 있다.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것의 나열이다. 중언부언의 지루함이다. 세잔의 그림을 보면 불필요한 클리세를 최대한 배제하려는 투혼이 치열하고 비장하다. ‘비워내고, 또 비워내라. 그러면 최고에 도달할 것이다.’ 이것은 세잔의 좌우명이다. ’비움과 몰입을 꿈꾸고 지향하는 이 한 문장이 세잔을 후기 인상파의 대가로 만들었다.

“어떻게 백열등을 발명했습니까.” 신문기자가 토머스 에디슨에 물었다. 에디슨은 대답했다. “늘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노벨문학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이 대표작 ‘내 이름은 빨강’에서 말했다. “진정한 장인이 되려면 눈이 멀어야 한다.” 전 존재를 걸고 자신을 투신할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그 사람은 위대하다. 미래가 있다.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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