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의 전령사 설중매

2020-01-25 (토)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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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아직 남았는데 어디서 봄을 찾으랴. 초당 남쪽 매화 가지에 꽃이 막 피려하네. 봄바람이 복사꽃 자두꽃 피워내기 전에 단단한 가지에 상큼한 향기를 먼저 알리네 ’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 문인화가인 운수평이 쓴 설중매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봄을 알리는 전령사라고 하지만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은 따로 있다. 바로 눈 속에서 피는 꽃 설중매(雪中梅)다. 매화는 가장 추운 소한과 대한이 바로 지난 2월에 피고 추운 곳에서는 4월에도 핀다. 특히 눈 속에서 홀로 피는 매화의 고고한 자태는 유교 사회에서 선비의 굳은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꽃으로 조선의 선비들이 좋아하고 그렸던 4군자 즉 매,난,국,죽의 맨 처음에 호명이 된다.

이것을 인간사에 비유하면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장 먼저 걸어간 선구자의 역할을 매화가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꽃도 피울 수없는 추운 날 홀로 꽃을 피우니, 그 향기와 자태는 가장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만들어서 갔으니, 세상은 이 선구자를 기억하고 기리게 된다. 그러나 그 길에 대한 지지자보다 반대세력이 더 많은 관계로 선구자들은 늘 고통스런 역경의 길을 걸어가야 했다. 특히 소수만 가지고 있던 특권을 만인에게 주기 위해서 선구자적인 노력을 했던 사람들은 정말로 엄청난 고통의 댓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그 험난한 길을 선구자가 개척하고 그 길을 계속해서 걸어간다면 소수만의 특권은 이제 다수의 권리가 된다.

너무나 긴 세월동안 인간사회는 황제만이 권력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몇 명의 제후들이 권력의 일부를 황제로부터 하사 받아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류는 직접 권력을 갖기 위한 투쟁을 하였고, 마침내 1776년 7월 4일 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영국 여왕의 권력으로 부터 벗어나 스스로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하는 민주주의 국가 미 합중국이 탄생했다.

그러나 가장 선진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조차도 흑인들을 노예로 부렸고 여성들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그러자 백인 남성들만이 가지고 있던 특권인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모든 사람들의 권리로 만들기 위한 투쟁이 일어났고, 1920년 수정헌법 19조에 의해서 성별차이로 선거권을 제한 할 수 없다는 결정이 이루어지면서 미국의 수많은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물론 여성 참정권과 노예제도의 폐지 운동가인 수전 B 엔서니같은 권익운동의 설중매들이 있었기에 미국의 여성들이 남성 전용 특권이었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획득 할 수 있었다.

한편 노예의 사슬에서 해방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불평등의 고통에 신음하던 흑인들에게는 교묘하게 투표권을 제한하여 사실상흑인들의 투표권은 막혀 있었다. 여기에 1955년 12월 1일 백인 전용좌석에 앉았다는 이유로 체포당한 로사 팍여사가 용감한 설중매가 되어 흑인 민권운동의 시대를 열었다.

인류는 하나이면서 모두 동등하다. 그러나 이에 동의하지 않는 반 인류 패거리들은 호시탐탐 인류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그들은 조그마한 차이를 근거로 인종 차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자신들만의 특권을 획책 하면서 정치세력화를 꾀하고 있다. 이러한 세력들의 준동을 막고 인종 평등의 세상을 만드는 길은 적극적인 투표 참여다.

적극적인 투표 참여는 또한 한겨울 눈 속에서 봄을 알리는 설중매처럼 새역사의 희망을 개척한 선구자들의 정신을 대대손손 전하는 길이 될 것이다.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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