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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가’와 ‘단심가’

2020-01-22 (수) 이태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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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로 ‘그린일베’와 ‘좌음’이 있다. 아마도 녹색 베레모를 착용하는 미육군특수부대 ‘그린베레’에서 따 온 것 같은데, 네이버의 이미지 색인 ‘그린(Green)’과 극우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베(일간베스트)’의 합성어로 네이버 뉴스 댓글의 내용이 주로 우파 성향을 띤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그 반대로 다음은 좌파성향의 글이 많아 ‘좌음’으로 불린다고.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보는 주류경제학과는 달리 비이성적이라고 규정하는 행동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인지적 편향’이라는 개념이 있다.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보고 믿다 보면 ‘확증 편향’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편단심 독선독단적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우리 말에 ‘배알이 꼴린다’는 표현이 있다. 아니꼬와서 견딜 수 없다는 뜻으로. 하지만 꼴릴 배알이라도 좀 남아있는 편이 낫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시인 김지하씨의 글 ‘오적(五賊)’이 실리는 바람에 폐간되고 말았지만 월간지 '사상계'의 당시 발행인 부완혁 선생님이 나에게 ‘무보수 게릴라 편집장’ 일을 부탁하시면서 글쓰는 사람들 가운데는 집권세력에 의해 발탁되기 위해 고의로 정부를 맹비난하는 ‘글쟁이’들이 있으니 이런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다.


옛날 젊어서 잠시 해본 신문기자 시절 동료기자들 중에 유난스럽게 비분강개하며 위정자들을 헐뜯던 친구들이 얼마 후에 해외공보관이다, 정부 대변인이다, 청와대 비서관이다, 권력 핵심의 주변인물로 등장했다가 정부 여당의 전국구 의원이나 장,차관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는 걸 보아 왔다.

이씨왕조를 세운 이성계를 비롯하여 일정시대 친일한 인사들처럼 영어속담대로 ‘이길 수 없거든 가담 합세하라’는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이리라.

우리나라 역사를 돌아 볼 때 “이 몸이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 ‘단심가’의 정몽주를 이상주의자라 한다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이 하여가’의 이방원은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 한 번 생각 좀 해보자. 윤동주처럼 일찍 죽는 것과 이광수 같이 오래 사는 것, 어느 쪽이 더 좀 성숙하고 현명하며 도통한 경지일 것인가를. 흔히 청소년 시절 ‘현실주의자’라면 산 송장과 같고 중장년에도 ‘아상주의자’라면 저능(低能)의 지진아 (遲進兒)라고 하지 않나.

그렇다면 유유자적 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몸은 그럴 수 없다 해도 마음만이라도 말이다. 옛 선철(先哲) 말씀 한두 마디 되새겨 보자.

부귀하면 남들이 나를 받드나 그것은 내 부귀를 받드는 것이고 빈천하면 나를 멸시하나 그것은 내 빈천함을 멸시하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나를 받드는 것도 멸시하는 것도 아니니 좋아할 것도 언짢아할 것도 아니리라.

유심정토(唯心淨土)-마음 밖에는 딴 세상이 없으므로 극락은 결국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경지-는 속맘 마음씨 마음자리에 있으리니. 애오라지 배알부터 추스리고 볼 일이리라.

<이태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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