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미국 대통령이 남기는 정치적 유산 가운데 영향력이 가장 크면서도 오래도록 미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연방판사 임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헌법에 따르면 연방 판사는 대통령이 후보자를 지명하고 상원이 인준토록 되어있다.
2018년 기준으로 연방 판사 수는 총 860명으로 대법원에 9명, 13개의 항소법원 179명, 94개의 지방법원 663명, 국제 무역 재판소에 9명의 판사가 재직하고 있다. 그 외 시니어 판사, 행정 판사, 치안 판사들도 연방판사들인데 이들을 합치면 그 수가 더 늘어난다.
삼권분립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미국에서 사법부가 가지는 힘은 실로 막강한데 그 예로 2000년 대선에서 플로리다주의 재검표를 중지시키며 부시를 대통령으로 인정해준 부시 대 고어(Bush v. Gore) 사건, 기업과 비영리 단체들의 정치후원금 상한선을 없애 선거유세 방식을 바꿔버린 시티즌스 유나이티드 (Citizens United v. Federal Election Commission) 사건, 동성 결혼을 합법화시킨 오버게펠 (Obergefell v. Hodges) 사건 등을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사실은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8년의 임기 동안 2명의 대법관과 55명의 항소법원 판사를 임명한 데 비해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임기 3년 동안 2명의 대법관과 50명의 항소법원 연방판사를 임명함으로써 두 배나 속도를 냈다는 점이다. 미국에선 지역별 항소법원이 사실상 최종심 역할을 한다고 볼 때 그만큼 빠르게 연방 사법부를 공화당 입맛에 맞게 보수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하원의 민주당이 트럼프 탄핵에 매달려 있는 동안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은 트럼프가 지명한 판사후보들을 신속히 인준함으로써 사법부에 보수 대못을 박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미래 공화당 장기집권의 토양을 만들어두기 위해 종신직인 연방판사 자리에 계산적으로 50세 이하의 소장 판사들을 주로 임명하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대법원에 이어 뉴욕이 속해 있는 제 2항소법원, 뉴저지가 속한 제3항소법원, 조지아와 플로리다가 속한 제 11 항소법원, 심지어 진보성향의 보루였던 캘리포니아가 속한 제 9 항소법원까지 모두 보수성향으로 돌아선 것으로 법조계는 분석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트럼프와 상원 공화당 의원들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한발 더 깊숙하게 들어가 보면 “페더럴리스트 소사이어티(Federalist Society)”라는 보수성향 법조인 단체가 40년간 가꿔놓은 터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이야기는 레이건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레이건은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보수성향의 주법원 판사 및 로스쿨 교수들을 연방 판사로 임명하는 한편 1982년 예일, 하버드, 시카고대 등 명문 로스쿨 학생들로 하여금 페더럴리스트 소사이어티라는 단체를 설립토록 측면지원하였다.
페더럴리스트 소사이어티는 레이건의 기대대로 보수적 법해석에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로스쿨부터 형성되는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정치성향이 검증된 판사 및 고위공직자 후보군의 풀 역할을 해줌으로써 오랜 기간 공화당의 든든한 동맹이 되었던 것이다. 현재 보수성향 대법관 모두가 이 단체의 멤버였다고 알려져 있으니 가히 그 영향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워싱턴D.C에 본부를 두고 있는 페더럴리스트 소사이어티는 지금도 200개 이상의 로스쿨 지부와 65,000명의 회원을 통해 미래의 보수 법조인들을 키워내는 산실 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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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락/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