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285)제42대 William Jefferson Clinton 대통령③

2019-12-16 (월)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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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gan대통령과 Bush대통령의 임기중에 “가족계획”을 위한 연방 program 들을 거의 다 폐지되어 버렸었다. 그 결과로 저소득층의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이 대폭 늘어나고 “불법임신중절”도 많이 늘어 났었다. Clinton 이 취임하고 이틀째인 1월 22일은 1973년의 연방대법원이 “Roe v. Wade” 판결을 하고 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날에 Clinton 은 “임신중절은 안전해야 하며 합법적이어야 하고 흔이 있는 일도 아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연방의 가족계획 programs 들을 전부 부활시켰다. Clinton 의 대통령재임 8년동안에 미국의 임신중절은 18.4% 가 줄어들었는데 “뒷골목 불법중절수술”로 부터 여성의 건강이 상해되는 일들도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Clinton은 취임후 한달이 되기전에 “The Family and Medical Leave Act of 1993” 에 서명하였다. 이 법으로 고용주들은 종업원이 임신을 했거나 가족중에 중환자가 생겼을 경우에는 무급여휴가를 주어야만 하도록 되었었는데 이법은 양당의 찬성을 받았었고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었다.

역시 취임후 한달이 되기전인 2월 15일에 Clinton 은 첫 대국민방송에서 예산적자를 줄이기 위해서 세금을 올려야만 하겠다고 발표하였었다. 이틀후에 전국에 생방송으로 중계된 첫 양원합동회의에서 그는 자신의 경제계획을 발표하였었다. 그는 선거운동중에 중산층의 세금을 인하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었었지만 예산적자를 줄이기 위해서 세금의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얘기했다. Clinton 의 보좌관들이 국채의 이자율을 내려가게 하기 위해서는 중산층의 감세보다는 예산적자를 줄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조언하였었던 까닭이다.


Clinton 은 5월에 백악관의 여행담당직원들 7명을 전원해고 하였었다. FBI 의 조사결과 부적절한 일들이 있었음을 알게되어 취한 조치이었 었는데 야당에서는 Clinton이 백악관의 여행업무를 친지에게 넘겨주기 위해서 취한 꼼수라고 비난하면서 Travelgate 라고 불렀었다. Nixon 의 Watergate 사건이후 대통령이 관련된 모든 “의혹사건”에 gate 를 붙이기 시작한 까닭이다. 곧 이어서 Clinton 이 Arkansas 주지사를 하고 있을때에 Hillary Clinton이 연관이 되어 있었다는 White water 라는 부동산투자에 대한 “불법대부 압력사건”이 있었는데 SEC 의 조사결과 기소된 사람들이 있었으나 Clinton 부부는 혐의가 없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Whitewatergate 에 연관되어 있었다고 비난을 받았었다.

그해 12월에는 Troopergate 라는 “큰” 성추문설이 American Spectator 에 보도되어 Clinton 은 “진짜로” 곤역을 치룬다. Clinton 이 주지사로 재직하고 있을때 주의 경관 (trooper) 두명을 보내서”Paula” 라는 주직원인 여자를 호텔방으로 데려오도록 했다는 것이었는데 추후 조사결과 두 경관들이 누구의 뇌물을 받고 거짓말을 한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공화당계의 지원으로 변호사를 고용해서 Clinton 을 고소하였던 “Paula” 라고 불리워졌던 Paula Jones 와의 관계는 사실이었던것 같으며 추후 이문제에 대한 연방특별 검사의 심문에서 Clinton 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대통령탄핵까지 받게되는 이유중의 하나가 되었었다. 이 소송은 결국 85만불을 Clinton 이 지불하기로 합의하면서 해결되었 었다. 이 사건을 Troopergate 라고 불렀었다. Jones 외에도 최소한 세명의 여성들이 Clinton 과 관계를 갖었었다고 주장하였었다.

1993년 11월에 Clinton 은 총기휴대 허가심사를 강화하는 Brady Bill 에 서명하였다. 미국민들은 “총기휴대권”을 국민의 기본권중의 하나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그럴만한 역사적인 연유는 있다. 거의 모든 경우에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에 서명하는것은 정치적 손실을 초래하기가 십상이어서 대통령에게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미국개척초기에는 생존을 위하여 야생동물들을 사냥하는것은 필수수단중의 한가지 이었었다. 또 영국식민지시절에는 영국의 압제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민중들의 총기휴대는 불가피할 뿐만아니라 “애국적”인 일이라고 까지 생각하게 되었었다. 그런 이유로 미국의 헌법이 제정되었을때 제2헌법개정조항 (The Second Amendment) 으로 ”국민의 총기휴대권”이 보장되었고 이 조항은 지금까지도 건재하고 있다. 지금은 전쟁이 일어나면 대포도 아닌 missile 을 쏘아대는 시대에 권총이나 사냥총으로 적군에게 저항하겠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무엇이든지 간에 “기본권”은 계속 “수호”하겠다는 본능이 있어서 총기휴대 제한은 “신성불가침”쯤 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었다.

산악지대의 농민들이나 사냥꾼들에게 총기는 필수적인 것이지만 점점 더 늘어나는 총기로 인한 살상사건들을 보면서 미국사람들은 “총기의 제한을 해야 하겠다” 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나도 총을 가져야 되겠다” 라고 본능적인 반응을 하여 총기휴대가 더 늘어나고 있는것도 같다. 이런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주류로 모인 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 은 아주 강력한 보수단체가 되어서 선거때마다 정치인들에게 헌금믈 해가며 압력을 가하고 있고 무기제조회사들과 총기거래상들은 치부를 하기 위해서 총기휴대 자유를 주장하고 있으며 정당과 상관없이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 인종차별주의자등 극우파적인 사람들과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무기휴대 자유를 지지해 오고 있다. 지난번 대통령선거때에 Trump 의 가장 중요한 선거공약중의 하나가 “The Second Amendment” 보존이었었다. 이들이 말하는 “총기”에는 소형권총 뿐만아니라 기관총과 거의 같은 화력을 가진 전쟁용 AK-47 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곰곰히 생각해 보면 끔찍할 정도이다.

1981년에 Reagan 대통령이 정신병자 Hinckley 로 부터 생명에는 위협이 되지않았던 총상을 입었을때 바로 Reagan 옆에 서 있었던 James Brady 백악관 대변인은 Hinckley 의 총격을 머리에 받아서 평생의 불구자가 되었었다. Brady 피격 직후부터 그의 부인 Sarah Brady 는 Reagan 과 Bush 대통령들 임기내내 재단을 만들어서 총기휴대단속 국민운동을 벌여왔었다. Brady Bill 에는 총기를 구입하기전에 구입자의 신상조사를 하기 위하여 5일간의 유예기간이 있도록 하는 규정이 있었다. Brady Bill 은 실질적인 강력한 총기제한을 위해서는 아주 미흡한 것이지만 총기제한을 해야한다는 미국민들의 여론이 최초로 반영된것이고 그러한 법안에 대통령이 서명했다는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대통령 취임후 첫 두해인 1993년과 94년동안에 Clinton 은 여러가지제도 개선과 새입법 들을 해내었다. 많은 국민들은 “개선”이라고 찬성하였었지만 다른 또 많은 사람들은 “개악”이라고 강렬하게 반발하였었다. 또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을지라도 Clinton 개인에 대한 “...gate” 들도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었었다. 이러한 국민들의 정서의 동요를 이용하여 연방하원의 야당 원내총무이던 Georgia 주의 Newt Gingrich 하원의원은 1994년의 중간선거 (상하원의원만의 선거) 에서 전국에 유세를 다니며 반 Clinton 돌풍을 일으키는데 성공하여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공화당이 연방상하양원의 다수당이 되었고 Gingrich 자신은 연방하원 의장이 되어서 사사건건 Clinton 의 정책에 제동을 걸기 시작 하였고 Clinton 이 타협적인 중도로선을 따를수밖에 없도록 몰아갔다. 특히 미국의 연방하원은 1961년부터 중간의 2년정도를 제외하고는 항상 민주당이 다수당이었던 까닭에 이같은 선거결과는 놀라운 일이라고 할수 있는 것이었다.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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