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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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2019-11-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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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우울한 날 지나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으로 다 지나가는 것이며/지난 것은 소중한 것이라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의 220주년 탄생이라고 해서, 위의 시가 얼마 전에 신문에 실렸다. 나도 젊었을 때 이 시를 여러 번 읽었다. 그리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라 괴로워하고 있었을 때, 시간이 지남으로 해서 모든 어려운 일이 저절로 해결되어버리는 경우를 여러 번 겪었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를 다시 읽어보았다. “삶이 나를 속이고 있는데 슬퍼하지도 않고 노하지도 않고 그리고 가만히 견디고만 있으면 ‘기쁨의 날’이 올 것”이라는 말! 이게 뭔가 내 마음을 거슬린다.


슬픈 일이 생겼으면 당연히 슬퍼해야한다. 그런데 슬퍼하지 말라고? 화난 일이 생겼으면 당연히 분한 감정을 느껴야한다. 그런데 화내지 말라고? 슬픈 일이 생겼는데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면, 우울증에 빠져들 위험이 있다. 화난 일이 생겼는데, 화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난폭해질 수가 있다.

슬픈 일이 생겼을 때는, 자기의 슬픈 감정을 느끼고 있어야 슬픔을 이겨낼 수가 있는 것이다. 화가 났을 때는 자기가 화난 감정을 알고 있어야 화를 적당하게 풀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실연을 당했다고 가정해보자. “우울한 날 지나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하고 “슬퍼하지도 않고 노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다면” 당신은 더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감정을 부정(否定)하거나 말살해서는 안 된다. 실연을 당했으면 당신은 당연히 마음 아파해야 한다. 아파해야 실연의 아픔을 견디어낼 수가 있고 그리고 이겨낼 수가 있는 것이다.

가령 당신이 사업에 실패했다고 가정해보자. 실패했기에 온 가족이 굶주리게 되고, 그리고 빚쟁이한테 쪼들리게 된다. 이때 당신이 푸시킨 말대로,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고 그리고 우울한 날 지나면 기쁨의 날 오리니.” 하고 기쁨의 날이 오기만을 마냥 기다리고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정말 엉망진창이 되고 말 것이다.

당신이 사업에 실패했다면 당신은 당연히 슬퍼해야 하고 분노해야 한다. 분노해야만, 분노가 다음 사업에 실패하지 않도록 그리고 다음 사업에 성공하도록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분노와 슬픔 때문에 당신은 문제해결을 위해서 궁리하게 되고 그리고 새로운 계획을 짜낼 수가 있는 것이다.

마음이 미래에 가 있어서는 안 된다. 마음은 언제나 현재에 있어야 한다. 현재의 삶이 지금 당신을 괴롭히고 있다면, 현재가 괴로운데 어찌 미래가 기뻐질 수가 있겠는가?
기쁜 미래를 원하는가? 먼저 현재의 괴로움을 해결해 놓아야 한다. 현재가 편하면 미래도 편안해진다.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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